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컴 May 16. 2021

#4. 행운의 열쇠

데이터사이언티스트가될 줄 알았는데 못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긴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런 시기였고, 혼자였다면 그런 감정을 덜 받았겠지만 함께 나아가고 싶은 사람과 노를 잘 젓고 싶은 마음이 앞서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도 조금씩 피어오르던 시절이었음을 인정한다. 무언가 결과물을 획득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저 멀리 부옇게만 느껴졌던 몽글한 안갯속에 본연의 자태를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감정을 느껴서 가끔 오싹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 불안함 속 고요함을 반추할 때면 가끔 흠칫 놀라기도 한다. 



내 능력 밖의 사건들로 인해 좋은 기회를 잡았다. 이런 걸 행운이라고 부르나 보다.
그 행운의 기회를 찾기 위한 노력이 내가 한 전부였던 것 같다.


이맘때쯤 특수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2학기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부생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전문분야를 가지고 비슷한 꿈과 생각을 가진 또래 동료들과의 새로운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나는 것이었다. 마음 맞는 친구들 몇을 사귀고 정기적으로 술자리도 갖고,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그중 각별히 특별한 관계를 시작한 곳도 이곳임을 밝혀두며.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원우들(대학원에서 만난 교우들을 이렇게 부르더라. 거리감이 느껴져서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다.) 중에서 당시 IT업계에서 동종업계의 조금 더 규모가 큰 직장으로 이직한 지 1년이 조금 안 된 친구가 있었는데, 나이대도 비슷하고 미처 몰랐던 학연도 있어서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차였다. 당시 근 1년을 돈 많았다가 돈 줄어들어가고 있는 백수로 지내던 나의 무엇을 보았는지 친하게 잘 지내주어서 '이 친구는 그래도 사람의 당장 가진 부분만을 보는 친구는 아니구나'라고 내심 좋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인데, 여느 때처럼 무탈하게 잘 지내다가 대뜸 (내 귀에는) 지나가는 소리로 '자리 있는데 알아봐 줄 수 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더라. 


읭? 지금 내가? 내가 뭘 들은 거지 ㅋㅋ?  

알게 모르게 그런 게 있더라. 나도 그때까지는 서두에 표현했던 수준의 정체 모를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찰나였으나, 사실 그게 불안감인지 나태함인지 편안함인지 도전정신인지 모호해서 크게 개의치 않으며 살아가던 시기였다. 


'잘 되겠지. 지금 뭐 크게 문제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내 능력이 어디서 밥값 못 할 수준은 아니지. 지금까지 탄탄대로 걸어가며 해온 것들이 있는데.'


한편으론,


'새로이 배우는 학문과 기술 측면에서 내 능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인 건 맞는데, 커리어 전환이 가능하긴 할까?' 

'신입사원 수준에 많은 부분을 접고 저자세로 들어가도 될까 말까인 게 현실인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불현듯 현실 앞에 '직장', '취업'이라는 단어가 놓이기 시작하니 가슴이 뛰면서 정체를 숨겨왔던 온갖 감정들이 일거에 배설되기 시작하더라. 지금까지는 '대학원', '커리어 전환', '교육'과 같은 키워드 안에 나 자신을 꽁꽁 지켜오며 냉랭한 현실을 마주하지 않고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라고 되뇌며 내가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시장' 이란 공간과 평행을 유지하며 나의 '멘탈'을 지켜왔던 게 아닐까? 


나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돌아봤던 게 상당히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사실 꽤 오래 쉬었고, 쉰 만큼 발전하지 못했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사실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 겉보기엔 대학원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최신 IT 기술도 습득하고 있고, 소셜 미디어에 나를 팔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포트폴리오로 둔갑하고 있었으나 기실 내가 목적에 둔 시장에서의 내 가치는 답보상태 또는 아주 완만한 우상향 곡선인 상태였던 것. 


그렇기에 나에게 던진 '자리 있다'라는 한 마디는 지나가는 소리였을 거라고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말이라도 해주니 정말 고맙다. 덕분에 동기부여가 된다.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해서 일자리를 알아봐야겠다. 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사진 출처 : Pixabay)


그런데 그 친구가 다시 말했다. 사람 사이에 군더더기 없이 인과관계가 명확한 걸 좋아하는 친구라서 더 그랬을 것이다. 


"진심이야. 추천해 줄 수 있어. 직무는 OO이고. 생각 있으면 말해줘."


정말이었다. 그 친구는 못나가고 있던 나를 진짜로 추천해 주었다.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행운의 황금열쇠를 쥐여준 것이다. 


황금열쇠. 

나도 이제 자리 잡고 3년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잘 알 수 있다. 나도 추천이란 걸 해보는데, 이게 나의 이미지에도 적지않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내가 엉망인 모습을 보이면, 나를 추천해 준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리가 만무하다. 보답받아도 마뜩잖은데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양날의 검, 아니 그냥 부메랑. 그럼에도 자리를 알아봐 주고 과정에서 많이 도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커리어 전환을 성공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만 잘하면 되는, 내가 연구하면서 돈 받아가며 조직에 기여하는 선순환을 드디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5년 준비하고 2년 반 일했던 스포츠 마케터로서의 삶과 눈물과 함께 작별한 후 근 1년 9개월 만이다. 


나이 30에 1년 9개월, 21개월 쉬어봤는가? 

눈물 나게 신나고 여유롭다가도 불현듯 두려워지는 그 감정, 내 인생 경험에서 너무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나에 대해서 두 가지를 알 수 있었다. 


1) 역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성장할 수 있다. 

2) 안정적인 직장만 있다면. 프리랜서는 적성에 안 맞는다. 


솔직히 1년 6개월까지는 행복 일변도였지만 3개월은 조금 어려움이 있었다. 쉴 만큼 쉬고 놀만큼 놀고 이론적으로는 알만큼 알았는데, 이제는 실무 경험이 필요한데 나이는 30을 넘겼고 선망했던 스타트업은 린, 어자일 방식의 빠른 사고를 바탕으로 빠른 의사결정과 넓은 업무영역을 커버할 인재가 필요할 것이고, 대기업은 바로 들어가긴 어렵고. 뭔가 어중간한 위치에 선 것만 같은, 시장에서 잘못했다간 표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짊어지고 슬금슬금 취업 준비를 시작하던, 심적으론 만만치 않던 시기였다. 


그래서 가끔 지금도 생각한다. 

과연 나 혼자서 이 문을 쉬이 열 수 있었을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더 큰 추가적인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을까? 


나에게 이 황금열쇠를 쥐여준 그 친구와, 그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 수 있을 정도로라도 준비해뒀던 당시의 나 자신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이런 나 하나만 바라보며 묵묵히 옆에서 자리 지켜주며 응원해 준 그녀는 내 인생 최고의 은인들이 아닐까? 


고마운 사람들. 

행운의 열쇠 이전에 당신들을 알게 되어 행운이다. 



다음 화에 계속

5화 예고 : 통계학이 로그아웃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3. 나가는 문은 가볍고 들어가는 문은 무겁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