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인도생활
5월 초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태어나 처음 다쳤고, 처음 입원해서, 처음 마취하고 수술을 했다.
인도에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또 다시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뒤쳐지게 되었다.
내 인생은 항상 남들보다 조금 뒤쳐진 체 살아왔다.
대학교부터 군대, 워홀, 취업, 결혼 등등
인생에 이정표라고 할 만한 여러가지 큰 사건들을
나는 조금씩 늦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늦는게 두렵지도, 조바심이 나지도 않는다.
....아니다. 조바심은 난다.
이렇게 늦어도 되나. 그런 생각들이 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렇게 맨날 늦다 보니
이젠 늦는다는 것이 그렇게 두려워할 만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 조금씩 늦게 큰 일들을 해왔지만
다행이 그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모두 다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다.
결국 늦음으로 인해 신경썼던 것들은 그저 남들과의 비교에서 비롯되는
그닥 중요하지 않은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남들보다 늦었대 봤자 대학교 1년(반수), 군대 2년(딴짓하다가),
워홀 2년(그래봤자 25살에 갔다), 취업(다른 남자애들보다 3년 늦음)
결혼(이건 다들 늦게하는 추세가 되버려서...) 이정도 늦었다.
내가 만족할만한 결과는
반수를 하며 결국 멈춰있는 것 보다 나아가는 것이 맞는 길이고,
내 자리에서 객관적으로 봐도 부족함 없이 최선을 다해 갈고 닦으면
결국 뭐든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 (일종의 정신승리 같다)
군대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부지런함을 깨우쳤고
(행정병 같은거라 일이 밀리면 답이 없었기에 제때제때 잘 해야했다.)
책도 1년에 100권 읽어봤고(도서 관리도 했다)
워홀을 가고자 하는 꿈을 꾸게 됬다.
워홀도 남들보다 늦게 갔는데, 거기에 수출되는 우리 기업의 제품을 보고
처음으로 취업하고 싶은 회사가 생겼고, 결국 취업했다.
취업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으니 결과는 만족이었고,
나름 결혼도 좋은 사람을 만나 만족스럽게 잘 했다.
갑작스럽게 이렇게 나의 늦은 인생을 되돌아 보는 것은
지금의 늦음이 결국 나를 다지고 최선을 다하게 할 마음을 만들어 주리라는
일종의 자기 위안을 삼기 위함이리라.
4월 말쯤, 인도에서 사람들을 좀 사귀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가 뛰고있는 풋살팀에 들어가기로 했다.
한번 뛰어보고, 다음부터 회비도 내고 회식도 가야지.
그런 생각으로 가서 풋살을 했는데
생각보다 축구가 너무 잘되서 내가 이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성장했구나 생각하며
다양한 것들을 해보다가
끝나기 15분쯤 전에 착지 실패로 다리에 금이 가버렸다.
다리 부러져 본 사람들은 안다는 그 소리를,
착지할때 들린다는 뼈에서 나는 빡 소리를 들었다.
신기하게 하나도 안아팠다. 근데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지 않은 다리를 조심스래 바닥에 두고 앉아
큰일났다 어쩌지 를 속으로 되뇌이며 병원에 갔고,
왼쪽 무릎엑스레이에서 여러개의 굵고 가는 금을 봤다.
천만 다행으로 뼈만 금이 가 관절이나 인대엔 무리가 없고
뼈도 다 제자리에 있어 최악은 아니나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을 받았다.
그 후로 깁스를 하고 1주일간 병원과 회사를 돌며
수술을 한국에서 할 지, 인도에서 할 지 한참을 고민하다
여러가지 여건 상 인도에서 수술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5월 초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태어나 처음 다쳤고, 처음 입원해서, 처음 마취하고 수술을 했다.
인도에서.
이 인도 병원에서는 수술 전 의사가 수술 방향에 대한 설명도 안해준다
수술 끝나도 어떻게 됬는지 설명 안해준다.
여기선 목발도 팔지 않는다. (물론 목발은 깁스 하자마자 어떻게든 샀다.)
수술 받고 다음날 바로 퇴원했다.
집에 정말 다행이도 바퀴달린 의자가 하나 있어
지금까지 계속 그걸 타고 생활한다.
이게 없었으면 나는 어떻게 지냈을까...
덕분에 밥도 어떻게든 해서 먹고 그나마 편하게 살고있다.
다치고 나서부터 1달정도는 쓰레기봉투로 깁스를 감싸고 씻었다.
깁스를 푼지는 이제 1달 반이 좀 넘었고
아직도 목발을 짚으며, 바퀴달린 의자를 타고 산다.
한동안 앉아있는 것도 힘들어 책을 본다거나, 공부를 한다거나 할 수도 없었고
1달 정도는 밥 먹을때, 씻을때는 제외하곤 침대에만 누워 지냈다.
목발 짚고 나가도 10분 이상 돌아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가끔 외출을 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수술하기 전날, 아무에게도 얘기 안했지만 가족들이 너무 보고싶었다.
많이 해본 수술이라기에 크게 걱정은 안했지만
그래도 텅빈 병실에 혼자 누워 수술을 기다리는게 좀 서러웠다.
퇴원해서도 어느날엔가 한번쯤, 가족이 보고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서 핸드폰이나 책만 보는게
너무 답답하고 암담한 느낌이 들어서 였던 것 같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더더욱
내 가족의 소중함이 느껴졌고,
인도에 오기 전 출근도 안하고 함께했던 그 몇주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이었는지 다시금 느꼈다.
정말 1분 1초가 소중한 시간이었구나.
그리고 이 다리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
내가 가진 이 몸 중 과연 소중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구나.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런 것을 내가 어떻게 생각해 볼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정말
태초의 나까지 거슬러 올라가 온갖 것들이 다 소중하고
다 감사하게 느껴지게 된다.
내가 자유롭게 사용하던 시간,
내가 당연하게 움직이던 공간
그리고 그것들을 인지하고 활용하던 나 자신.
인도에 와서 이런 사건으로 깨달음을 얻을 줄은 몰랐다.
종교라도 공부하다가 깨달았으면 모를까....
그러다가 다리가 좀 낫고 나니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나는 다치고 나서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았구나
나와 함께 온 다른 사람들보다 1달 반 혹은 그 이상 뒤쳐졌구나
가족들을 뒤로 한채 홀로 인도에 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로 해놓고서는
이렇게 살고 있었구나.
아쉬운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다.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이렇게 다칠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대체 나는 왜 다치게 되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차피 답은 없는 것이다.
내 잘못이 없었더라도 어쨋든 다친것을.
어쨋든 나는 다쳤고
이미 뒤쳐졌고
아직도 뭔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뭔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금 목표와 계획을 세워
하나씩 해보는 중이다.
그러던 와중 조금은 안심해 보고자,
항상 늦던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보며
지금부터라도 잘 해 나가면 분명,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거다
라는 결론을 적기 위해, 이 글을 적었다.
걱정하지 말자.
늦은 만큼, 더 필요한 것만 할 수 있을 것이고
좀 더 중요한 것들에 집중하여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