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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가 됐더라도 마음이 앞서면 넘어진다.

5) 인도 생활

by 이목화

수술하고 3개월.

보통 이쯤이면 슬슬 목발 없이 걸을때가 온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 의사가 3개월차까지 발을 땅에 대지 말라고 했을땐

내가 외국인이라고, 자세히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보수적으로 3개월을 잡았나보다 싶었다.

원래 이런사람은 아닌데, 의사들의 느낌이나 뉘앙스를 보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내가 앞에 앉아있는데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온 드라이버에게 얘기를한다.

난 영어를 하고, 의사도 영어를 하고

드라이버는... 상대적으로 영어가 서툰 편인데

그냥 다이렉트로 얘기하는게 더 빠르고 정확할텐데도 말이다.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도, 그닥 자세하게는 설명을 안해준다.

전에도 썼지만 오죽하면 수술 전 후에

수술에 대한 한마디 설명이 없었을까

결국 인터넷과 유튜브, 여러 AI들을 통해 정보를 얻어야 했다.

이때쯤부터 좀 꼬였던 것 같다.


나는 조심성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원랜 안그랬는데 마법의 단어 취재가 시작되자...

가 아니라 회사 생활을 시작하자...

극 P 같았던 나는 J가 되기에 이르렀고

이 행동이나 결정으로 인해 많은 것에 영향이 가겠다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알아보고 생각하고 계획하여 결정하고 일을 한다.

그나마 계획이 틀어져도 큰 타격 없는 P의 의지가 남아있다.

여튼 그래서 수술 후 10주차부터 재활 시기에 대한 공부와

재활 방법 등에 대한 공부를 했다.

그러고 나서 11주차즈음 딱히 의사를 보지 않아도

12주차쯤엔 재활을 시작해도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난 건강하고, 다양한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있으며

그중 비타민 D와 칼슘은 병원 처방까지 X2로 먹고있고

하루 식단에 단백질 최소 60g은 섭취할 수 있도록 하고있으니까.

12주차까지 해야하는 재활운동은 매우 잘 수행하고 있고

큰 통증 없이 잘 회복되고 있었기 때문에.


12주차가 되자 나는 슬슬 발에 체중을 실어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괜찮다.

아프지 않다.

좀 더 실어봐도 아프지 않다.

심지어 그냥 한쪽발로만 서봐도 아프지 않다.

그래서 공부했던 재활 운동들을 이것 저것 하며

그래도 우리 애기 만나기 전까진 잘 회복할 수 있겠구나

하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실 조만간 한국에 잠시 돌아가게 됬는데

그때 아이와 잘 놀아주는 것이 지금 나의 1차 목표이다.

그래서 재활이 더욱 시급하고 간절했다.

열심히 재활을 한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명확한 가이드 없이 하는 재활은

좀 무모하기도 했고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하루쯤 지나고 무릎쪽에 통증이 생겼다.

다행이 심한 통증은 아니지만,

전처럼 편하게 걷거나 한발로 서진 못했다.

덜컥 겁이 났다.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정도면

근육이나 인대에 무리가 갔을 정도였다.

하지만 공포는 무지에서 비롯되는 법.

나는 최근에 엑스레이를 찍어본 적이 없었다.

내 뼈가 잘 붙었으리라는 확신이나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지만

눈으로 보질 못했으니, 이마저도 공포가 되었다.

분명 눈에 보이는 , 내가 느끼는 증상은

근육에 무리가 간 이상의 증상이 아닌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발을 내딛는 것에 공포가 생겼고

잠시나마 패닉에 빠졌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통화를 하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왜 조바심을 내고 있는가

내가 잘 회복했다면, 내가 아는대로라면

분명 한국에 가기 전까지 잘 회복할 수 있을텐데

그냥 기다렸다가 의사를 보고

의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눈으로 엑스레이를 보고

내가 확신을 가진 상태에서 운동을 해도 됬는데

의사나 재활운동 도와주시는 분들이

더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고

적어도 나의 루틴에 도움이 될 조언들을 구할 수 있었을텐데

한심하기 그지 없었다

비록 내가 인도에 있고,

이곳의 의료진과 100% 소통이 힘든 상황이고

병원 한번 가서 넋놓고 있으면 3~4시간을 대기해야 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나의 발이 잘못되는 것보다 안좋은가

내가 한국 돌아갈때 까지 목발을 짚고 가는 상황보다 더 안좋은가

한국 병원이었다면 무조건 생각했을 최선의 길을 알고있는데

바보같이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좀 더 많은 공부를 해서

재활을 좀 더 조심스럽게,

근력강화 - 균형 - 연습을 통해 진행 했더라면

내가 생각한 타이밍에 시작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이곳 병원의 경험이 좋지 않다고 한들

내 스스로 그것들을 배척해 버릴 필요가 있었나?

바보같은 일이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그런 선택들을 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면

나는 굳이 그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 생각에 상황이 좀 껄끄럽다면

굳이 내가 나서서 뭔가를 하거나

개입하려 들지 않았다

그게 나의 예의였는지, 눈치였는지

아니면 고집 같은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그냥 해보는건 나쁘지 않았을텐데

그리고 분명 나는 이 생각을 과거에도 했었고

지금과 비슷한 결론을 내려서 조금 개선 됬었을텐데

이렇게 환경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고 나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론 듯 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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