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을 향한 관심과 삶의 행복

by 이목화

아기가 백일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아이의 밤잠은 종잡을 수 없는 상태로, 어떤 주에는 6~7시간을 통으로 자더니 또 어떤 주에는 2시간에 한 번씩 깨기도 하고 일어나서는 몇 시간을 놀다 자기도 했다. 그렇게 밤잠과 사투를 벌이다 보니 어느새 100일을 맞이하여 나와 아내는 소소한 파티를 계획했다. 파티래봤자 그저 밖에 나가서 어디 다녀오기, 맛있는 음식 시켜 먹기 같은 소소함이었지만 축하할만한 일을 축하하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100일을 맞이해 또 하나의 기쁜 일이 생겼다.

바로 아이가 뒤집기에 성공한 것. 보통 이맘때쯤 한다더라 하는 얘기를 듣고 나름 기대하면서 옆으로 굴려주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거야 라며 알려주기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었는데 마침 100일째 되는 날 뒤집기에 성공했다. 단순히 한번 뒤집은 게 아니고 뒤집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매우 기뻐했지만, 한편으로는 뒤집기 지옥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각오를 다잡아야 했다. 아이는 이제 눕힐 때마다 뒤집으려고 시도했고, 잘 안될 때면 칭얼거리며 울분의 옹알이를 토해냈다.

뒤집기는 하나의 스킬일 뿐이지만 이로 인해 아이의 세상은 배로 넓어졌다. 그저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아이가 이젠 스스로 뒤집어서 바닥도 보게 되고, 몸도 더 잘 쓰게 되었다. 그리고 이맘때쯤 아이의 인지능력은 크게 발달하여 더 많은 걸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걸 확실하게 실감한 것은 바로 아이가 잠이 들 때였다.

보통 쪽쪽이라 불리는 공갈 젖꼭지를 물리고 짧으면 바로, 길면 2~30분 정도면 잠들던 아이가 쉽게 잠들지 않게 됐다. 크게 칭얼거리지도 않던 아이가 잠들려 할 때마다 칭얼거리고, 잠들기 직전까지 눈을 뜨려 애쓰다가 잠들고 나서도 불현듯 눈을 뜨고 잠들었다. 처음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은 생각뿐이었는데 그렇게 잠들기를 실패한 아이를 데리고 놀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얘도 엄마 아빠랑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 보다, 같이 노는 게 재밌고 좋은가보다.'

물론 이건 부모가 가진 어떤 바람이자 희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잠들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의 눈에서 세상을 좀 더 보고 싶은, 더 경험하고 싶은, 그래서 잠들기 아쉬운 그런 느낌을 받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어떤 날은 좀 더 놀고 싶어서, 뭔가가 더 하고 싶어서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애초에 자리에 눕지도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 아이는 누워서도 눈을 감으려 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아이라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그저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것들만 보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 순간이 아쉬워 잠들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이제 막 세상을 접하고 배워나가는 이 어린아이가 갖는 세상을 향한 관심과 거기서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즐거움에 대해 느끼며 한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한편으로는 나를 돌아보기도 했다. 자라면서 나이가 먹을수록 너무 많은 걸 경험하다 보니 이젠 웬만한 것에 흥미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뇌는 비슷한 것을 묶어서 인지하고 판단하게 하는 확증 편향이라는 게 매우 발달되어, 어떤 새로운 것을 접하더라도 보통은 그와 유사한 다른 여러 가지의 경험들을 되살려 해석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에 대한 즐거움이 갈수록 줄어든 다는 것이다. 물론 그만큼 처음 겪는 일이나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은 빨라지겠지만. 아기가 태어나 수많은 것을 매우 빠르게 익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확증편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히려 처음부터 뭔가를 배울 땐 이 확증편향이 디테일을 가려서 기본을 다지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는 것이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풍파를 너무 겪어 어지간한 일에는 무뎌져버린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아이는 내가 제공하는 이 작은 집이라는 공간에서도 수없이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느끼며 그 안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있다. 가장 강한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까지 억제해 가면서. 나는 요즘 어떻게 살았을까. 새로운 것을 탐닉하지만 노력은 하지 않으려 하고, 도파민에 절여진 뇌를 다시금 깨끗하게 해 보고자 노력조차 하지 않고 살진 않았을까? 아이를 키우며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그걸 바탕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육아는 아이도 키우지만 부모도 성장하는 아주 큰 자기계발일지도 모르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삶의 원칙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