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보다 눈길가는 최후의 만찬
11시간의 지루한 그러나 세종대왕보다도 더한 호사를 누리면서 비행기에서 보냈다. 앞으로도 타지 못할 비지니스석은 끊임없이 먹을 것이 나왔고, 내가 원한다면 더 많은 것들을 서비스 받을 수 있었다. 넓고 편안한 의자, 심지어 180도까지 누워지기까지 하는 의자는 옆사람과 앞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방해를 주지도 않아서 좋았다.
두번의 기내식을 끝으로 이탈리아에 도착했습니다. 하늘에서 본 이탈리아의 모습은 외국보다는 익숙한 제주도의 모습을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밀라노말편샤 공항을 내리니 우리나라 공항보다 더 허름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공항에 걸려있는 광고판들은 패션의 도시답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밀라노의 바깥 공기는 시원함이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비행기 안에서 파카를 입고 있어 더운 느낌만 가득하다가 추울꺼라 예상하고 잔뜩 옷을 껴입고 나갔는데 의외로 느껴지는 공기의 상쾌함은 이 도시에 대한 좋은 느낌으로 시작할 수 있어 좋았다.
밀라노는 이탈리아가 통일되었을때 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도시였고, 현재도 경제적으로 남부에 비해 부자인 도시이다. 그래서 북부사람들은 남부사람에 비해 소득이 높아 이탈리아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숙소로 이동하는 중에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들렀다. 우리나라와 별차이는 없었지만 출입구가 달라서 휴게소를 들어가면 한바퀴를 돌아야 나올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이 이것저것 고르면서 이탈리아를 경험했지만 나는 아이쇼핑만으로도 충분했다. 이후 이 휴게소는 내가 이탈이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이었다. 그리고 숙소로 들어왔다. 그러나 기내식이 잘못되었는지 밤새 구토와 메스꺼움으로 고생했다.
다행히 아침엔 속이 진정되어 가볍게 아침을 먹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아침은 떠날 때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침을 매우 간단하게 먹는다고 하였는데, 정말 간단한 요리들로 준비되어 있었다.
밀라노에서 첫번째 일정은 스포르체스코성이었다. 넓은 공원의 입구에 들어선 것처럼 느꼈는데. 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성주변은 공원처럼 되어 있어서 아침부터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상쾌한 공기는 이탈리아가 겨울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개선문이 성의 중심과 일치하게 서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들어왔을때 만든 기념문이라고 하였다.
성주변을 빙두르듯이 거닐었다. 성 바깥은 깊게 파진 해자로 둘러져 있고 그안으로 붉은 벽돌로 만든 성이있었다. 이곳을 스페인이 3개월만에 겨우 함락하고 성을 파괴했다고 한다. 이후 복원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고 한다. 이 성의 정문에 해당하는 곳을 새로 짓기 위해 공모를 했는데 다비치가 156층 높이의 정문을 세우겠다고 한 곳으로 유명하다. 물론 채택되지는 못했다.
성밖을 둘러본후 성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광장이 나오고 각종 그림들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있었다.
우리는 약간의 자유시간이 생겨서 지금은 박물관으로 변한 성내부로 들어갔다. 미완성 피에타를 보러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미켈란젤로는 4개의 피에타를 만들었는데 그중에 죽음 직전까지 만들다 채 완성 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은 피에타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피에타만을 위한 별도 공간에 전시되어 있었고 앞에는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피에타의 성스러움을 더해주었다.
스포르체스코성을 나와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곳곳에서 다니고 있는 트램들이 생소해보였고 한번 기회가 되면 타보고 싶다는 생각했다. 트램은 밀라노, 나폴리, 로마에만 있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은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가 거대한 청동 말 동상을 만들다가 경제적 문제로 완성하지 못하게 되자 그 일을 하고 있던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부탁했다고 한다. 다빈치가 성당 식당에 그려놓았는데 기존의 프레스코 기법을 부정하고 템페라기법을 사용하여 완성 직후부터 훼손이 심각하게 진행되었고, 나폴레옹은 마굿간으로 이곳을 사용했고 2차세계대전의 폭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림이었다. 어떤 영적인 기운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 우리나라로 따지면 팔만대장경의 기적과 비견될만한 일이었다.
이 그림을 20년동안 복원했다고 한다. 문화재를 복원하기까지의 인내와 노력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나라의 문화재 발굴이 오히려 파괴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 그림을 보는 방법은 25명씩 대기하고 있다가 2단계의 유리문을 거쳐서 들어가서 15분을 관람하는것이다. 2개의 유리문은 관광객들의 오염을 털어내는 건데, 마치 무균실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한쪽벽면에 새겨진 최후의 만찬을 실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기 때문에 예약 자체가 어렵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운 좋게 볼 수 있었다. 그동안에는 그림의 윗부분만 봤는데 이번에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그림 아랫부분까지 감상했다는 것이 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예수님 아래는 나폴레옹이 식당을 마굿간으로 쓰면서 문을 내어 아랫부분이 잘려나간 것까지 보게 된 것도 좋았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가 12제자와 밥을 먹으면서 너희들중에 배신자가 있을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순간 제자들의 마음속 동요까지도 표현한 작품이라 한다.
만찬 반대쪽 벽에는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림에 문외한 나에게는 잘 그린 그림으로 느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곳에는 정말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고 하였다. 심지어 토마스아퀴나스도 있다고 한다.
성당을 나와서 유명한 오페라가 많이 상영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인 스칼라 극장으로 갔다. 스칼라 극장은 오스트리아의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명령으로 산타 마리아 델 스칼라의 교회 자리에 세워져 이름이 지어졌다. 그후 2차세계대전때 파괴되었다가 1946년에 재건되었다.
극장 앞에는 다빈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밀라노가 경제적으로 침체기를 겪게 되자 앞으로 도시를 어떻게 다시 되살릴까를 고민한 끝에 다빈치를 이용한 관광을 개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한다.
스칼라 극장을 보고 갤러리아로 갔다. 1877년 에마누엘레 2세에 의해 완공된 미술관이자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쇼핑몰이다. 지붕 아래 바닥까지 전부 대리석으로 깔았는데 각각 밀라노와 피렌체, 로마, 토리노를 상징하는 적십자, 백합, 늑대, 황소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건축학적으로도 볼거리를 주었다.
또하나 유명한 것은 황소거시기를 밟고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있는 곳이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아이들이 단체로 와서 줄을 서서 돌고 있었다. 나도 한번 돌고 싶었지만 줄이 길고 성당을 가야하기 때문에 그냥 왔다.
아쉬운 마음을 두고 목적지도 모른채 따라 걷는데 갑자기 넓은 광장이 나오면 백색 성당이 거대하게 다가왔다. 그 앞으로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 엠마누엘레 2세의 동상이 서 있었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사람과 비둘기가 그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 광장에 선 모든 사람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 풍경에 매료된다면 조심할 것이 하나가 있었다. 가이드는 이곳에서 일단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큰일이라고 하였다. 이탈리아에 올때부터 소매치기 이야기를 많이 들어 조심해야 한다고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풍경에 매료되어 정신을 잃은 사이 소매치기를 당할 만 했다. 물론 막무가내 소매치기가 많으니 풍경과 상관은 없다라고 볼 수도 있다.
정면에서 성당을 보고 다시 내부로 입장하는데, 일일이 가방을 검사하였다. 군인들이 입구에서 철저하게 가방을 검사하였다. 몸과 가방 수색이 끝나고 성당을 들어서는 순간 수많은 기둥들과 장식으로 거대한 공간을 꾸며놓은 모습이 나타났다. 인간이 진실로 이것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었다. 1386년 밀라노 공국을 지배한 잔 갈레앗쪼 비스콘티의 명으로 시작되었고 약 400년이 지난 1809년 나폴레옹에 의해 일단락 되었다 한다.
성당으로 나와 성당 지붕쪽으로 다시 올라갔다. 빙글빙글 계단을 지나 숨소리가 가빠질쯤 지붕에 올라서니 수많은 첨탑들과 장식들이 빼곡하게 보였고 가까이에서 보니 건축물들을 정밀하게 꾸며놓은 것들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첨탑이 135개, 첨탑마다 성자와 동물 등의 조각이 3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갈려면 좁은 길을 따라 걸어야 하는데 가끔은 구석진 곳에서 몸을 최대한 줄여 지나가는 사람을 배려해야만 했다. 나 역시 그렇게 했더니 어떤 사람이 '그라시아' 라고 했다. 아마 고맙습니다 라는 표현일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웰컴이라 했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성당을 뒤로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돌아오다가 아쉽게 하지 못했던 황소거시기 돌기를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서 일행들과 함께 얼른 돌아보았다. 소원을 속으로 말하면서 빠른 속도로 돌려고 하니 어지러웠다. 어지러움에 소원도 어질어질 했다.
우린 작은 식당에서 짧은 파스타를 먹었다.
이곳에서 선생님 한분이 와인을 샀는데, 조금 마셨더니 술 기운이 올라와 다음 목적지인 로마황제의 휴양지이자 유명인들의 별장이 모여있는 알프스의 마을 꼬모로 가는동안 내내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