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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Aug 26. 2019

제주 10일살이 다섯번째 이야기

모르면 모르는 이야기-무명천할머니

한림읍 월령리는 일명 선인장마을로 불린다. 아내도 202버스노선을 따라 여행지를 정하더니 선인장마을에 가고 싶어했다. 이색적 느낌,  바다 이런 것들로 여행지로 선정하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시큰둥했다. 선인장은 흔하게 보는거고 식물원 비슷한데 가면 꼭 대규모로 여러 선인장을 꾸며놓고 가시조심하라는 문구가 있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한림공원에서도 선인장을 보았기 때문에 선뜻 가자고 동의하지 않았다.

나중에 서귀포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을을 들렀다. 도로 입구에는 마을 안내도가 있었다. 마을안내도가 예쁘게 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온다는 뜻일게다. 구불구불 아슬하게 곡예운전 끝에 바닷가 제법  공터를 만났다. 더운  여름이고 선인장 꽃은 없었지만 시원한 바다에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나무테크를 따라 편하게 산책하면서 즐기는 선인장의 생명력은 분명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조건이었다. 우연히 들어온 씨앗 하나가 사람이 떠난 자리까지도 퍼져가고 있었다.


연인들은 들고 찍는 셀카가 아쉬워 멀리 삼각대를 두고 찍었다. 웃음 가득한 연인을 배려하기 위해 잠시 멈추었으나 기다리는 것도 즐거움이라 먼저 지나가라는 마음씨 좋은 연인이었다. 작은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즐기는 빙수 한잔의 여유를 부리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내가 여기를 온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이었다. 제주에 오면 '제주4•3사건'을 염두해두면서 다녔다. 가지는 않을지라도 제주의 아름다움 뒤에는 그런 슬픈 역사가 있다는 것을, 이쁨 뒤에 뿌려진  피와 한은 아직도 제주도 어디를 가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냥 웃고 즐기기만 하면 안된다는 것을.


마을에 '무명천할머니'가 사셨던 집이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았다. 그래서 몇번을 이곳에 오고 싶어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았는데 마침 서귀포에서 오다가 이동 경로에 있고 시간 여유도 있어서 마을에 들렀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보존회의 노력으로 집은 예전 그대로 있었다. 그 앞 길에는 할머니를 주제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나도 몰랐었는데 예전에 자료를 찾다가 알게 되었다.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고 그런 분이 있다는 정도 알고 있었는데,  기회가 되었으니 그분이 살았던 집을 온 것이다. 집은 방 한칸 부엌 한칸에 작은 마당이 있었고 한쪽 마당에는 수돗가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지금도사용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집안에는 생전 사셨던 모습 그대로 놓여져 있었고 부엌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한쪽에 남아있었다. 나도 큰 절을 두 번하고 나왔다.

 

모르면 모르는 이야기들이 제주도라는 관광지에 묻혀있다. 많은 이들이 선인장을 보고 돌아가는 곳에 평생을 아픔을 아프다고 말조차 못하고 사셨던 분이 계셨다. 지금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기억을 기억할 수 있는 여러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최소한 선인장마을에 온다면 한번쯤 무명천할머니도 계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좋지 않을까.  즐기고 떠들고 놀다가 나중에 할머니집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안해 하지 않도록 말이다. 과연 해방이후 제주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한번쯤 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지구편 어딘가에는 지금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진실이 외면당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 이 마을 작은 카페에는 책들이 몇권있는데, 마을소식 책이 꽂혀 있었다. 무심코 꺼내서 읽어본데 무명천할머니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이 책을 보고서야 할머니를  조금더 알게 되었다. 고마운 책이다. 마을의 일을 기억하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공유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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