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준 삶의 변화는 등산이다. 갑갑한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아들의 다이어트를 돕기 위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산아래는 제법 많은 차들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우리 가족은 이곳까지 차를 가지고 오기도 하고 집에서 걸어오기도 한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젊은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초중고 학생들도 눈에 많이 띈다.
비하동 신선주연구소에서 시작해서 포장길을 따라 걸으면 공장도 보이고 식당도 보이고 밭도 보인다. 산밑에 공장이 허가난 점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부모산이 주는 즐거움을 많이도 앗아갔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길 양옆으로 벚꽃나무가 심어져 있어 멀리가지 않더라도 벚꽃구경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쭉 걸으면 연화사가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늘 포장도를 걷다가 왼쪽으로 틀어서 흙길을 걷는다. 계단이 많고 계속 오르막길이라 매번 걸어도 숨이 차다. 숨이 차서 꼴깍넘어갈 무렵 무덤 앞 제단 앞에서 목을 축인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쪽으로 부모산을 올라가는 사람들은 죄다 쉬는 풍경이다. 목을 축이는 시간만큼 걸으면 연화사가 나온다. 여기를 기점으로 왼쪽은 힘든 길, 오른쪽은 쉬운 길이라고 우리 가족은 부른다.
오늘은 왼쪽 방향이다. 왼쪽 길은 통신탑이 나올때까지 포장도로이며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이 길은 목련과 여러 꽃들이 있어 걷는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청주ic가는길이 훤히 보이고 문의 방면으로 시야가 탁트여 시원한 느낌을 준다.
오르막의 끝은 모유정과 통신탑이다. 모유정은 몽골의 침입으로 이곳에 피난온 사람들에게 엄마의 젖처럼 소중하다고 해서 모유정이 된 것이고 산은 부모산이 되었다. 또 아쉬운 점은 통신탑이 이곳에 있다는 것과 개인 집안의 무덤들이 울타리를 치고 있다는 것이다.
오르막길에서 다시 목을 축이고 왼쪽으로 돌면 성벽이 잘 남아있다. 성벽 돌에 앉아 쉬어가도 좋을 것이다. 성벽을 따라 돌면 어느새 성벽 위를 걷게 된다. 밖으로는 오창이 보이고 안으로는 각종 운동기구가 있어서 간단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이제부터 계속 내리막이다. 아이들은 신나서 뛰기 시작한다. 그러나 절대 뛰면 안되는 곳이다. 내려오는 길은 역사의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비가 내려 골이 된 부분으로 많은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모여 뒹굴고 있다. 관심없는 사람들이야 그냥 지나치지만 나같은 사람들은 손으로 만져보고 아이들에 문화재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많이 오면서부터 이 조각들은 탑이 되어가고 있었다.조각들의 무덤을 지나면 발굴이 끝난 성벽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이곳은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것 같다. 이곳에 서면 평야가 펼쳐지고 미호천을 넘어 서울로 가는 중부고속도로가 끝도 없이 보인다.
이제부터는 아이들과 퀴즈시간이다. 연화사에는 여러 마리 고양이를 키우는데 몇마리가 보이는지 맟추기, 색깔 맞추기를 하면서 등산의 지루함을 달랜다. 내려올 때까지 바닥을 줄 안 밟기, 식당 메뉴수 맞추기, 현수막 글자색 맞 추기, 도로 표지선 뛰기 등 온갖 게임을 개발해서 아이들과 게임을 즐긴다.
길지않은 시간을 아이들과 이렇게 보내는 것, 먼훗날 아이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 최근에는 산 아래에 카페가 생겨 산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가 되어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굳이 등산하지 않더라도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