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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을 주는 모기나라 Jun 18. 2020

청주 상봉재 옛길

엄마와 아이의 슬픈 전설

유난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갯길이 많다. 그러다 보니 교통수단이 발달할 수 없었고 오직 사람의 힘으로 소식이든 물건을 날라야 했다. 그래서 고개는 이별의 장소이면서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문경은 바로 서울에서 영남지방으로 전해지는 좋은 소식을 듣는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 아니던가.


사람과 물건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야기들도 만들어지는 곳이 고개다. 저마다 사연을 안고 떠나는 사람들과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의 소식을 궁금해 했을 것이다. 때론 이어지고 때론 잊혀지면서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면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청주의 대표적인 고갯길은 상봉재가 있다. 상봉재는 청주에서 보은과 괴산으로 연결되는 고갯길이다. 교통의 요지이다 보니 상봉재를 두고 왼쪽에는 유서깊은 상당산성이 있고 오른쪽은 것대산 봉수대가 있다.

현재는 산성도로가 만들어져서 상봉재 옛길 옆으로 차를 타고 쉽게 고개를 넘을 수 있다. 사람들이 더이상 오가지 않는 상봉재 옛길은 고맙게도 등산 코스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상봉재-것대산-낙가산을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고 숲이 우거져서 더운 여름에도 그늘에서 걸을 수 있다.


코로나가 만들어준 추억놀이는 아이들과 등산하는 것이다. 집앞 부모산만 다니다가 상봉재를 갔다. 원래는 산 아래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지금은 상봉재 옆으로 몇해전 터널이 뚫리면서 산중간에 주차를 하고 쉽게 걸어 올라 갈 수 있다.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주차장도 꽤 넓게 되어 있고 쉼터와 연못, 잔디 광장 같은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상봉재 옛길이라 써여진  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그늘을 만나걸을 수 있다. 경사가 심하지도 않고, 계단도 중간중간에 잘 만들어져 있어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다. 길을 걷다보면 산딸기가 양옆으로 가끔 보여 아이들과 산딸기를 따 먹으면서 걷는 재미도 솔솔하다.


특히 아들은 산딸기를 좋아한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시골집에서 부모님께서는 산딸기를 때마다 가득 보내주셨다. 보기에도 새빨간 산딸기는 먹음직스러웠고 아이들은 한움큼 쥐고 입안에 털어넣곤 했다. 너무 많아 냉장고에 넣어두고 산딸기, 토마토, 매실액을 넣어 주스도 만들어 먹었다. 그 맛은 아무리 솜씨없는 사람이 만들어도 맛있을 수 밖에 없다. 아들은 어릴 때 먹던 산딸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DNA는 이렇게 후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시골집이 관리가 안되서 산딸기 나무들은 풀과 엉켜서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사람이건 동식물이건 세상 모든 것은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제대로 살아가는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나와 내 가족이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 감사한다.


상봉재가 오랫동안 교통로였음은 길 곳곳에 남아있다. 바위에 새겨진 조선시대 관리들의 선정비며 성황단 돌무더기는 걷는 즐거움과 함께 역사공부도 된다. 선정비앞 소나무는 뿌리가 노출되어 곧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선정비앞의 수문장인 것처럼 지키고 있는데 존경의 의미로 마치 절을 하고 있늣 듯 하다. 그러나 그 선정비는 진짜 백성들의 고마움의 표시일지 강압에 의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선정비를 지나면 사람들이 한번 쉬어가는 약수터가 나온다. 힘겹게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수와 같았으라 생각된다. 지금도 시원한 약수가 흘러나오고 있고 약수터 앞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있어 더위를 피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약수터를 지나면 큰 돌무더기가 나온다. 서낭당 또는 성황단이라 불리는 것이다. 신앙의 장소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곳을 지날때 돌 세개를 올리고 절을 세번하고 침을 세번 뺕으면 복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이곳의 물건을 가져가거나 무너뜨리지 않았다.이외에 서낭단은 신변보호를 위해 돌을 가지고 산에 올라 쌓아두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조상님들의 삶이 쌓인 곳이다.  


성황단을 지나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하면 것대마을-낭성-미원을 거쳐 괴산 또는 보은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면 상당산성으로 연결되며 오른쪽으로 가면 것대산과 낙가산을 갈 수 있다.

갈림길에서 슬픈 사연을 만날수 있다. 조선시대 영조때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서 청주가 점령당할 때 목숨을 잃은 홍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홍림에게는 해월이라는 첩이 있었는데, 홍림이 죽고 나서 아들을 낳았다. 해월은 정성스럽게 아들을 기렀는데 어느날 스님이 와서 아들이 일찍 죽는다는 말을 하자 절에 아이를 맡기게 된다. 그리고 10일마다 성황당 고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단 아무리 아이가 보고 싶어도 성황동 고개를 넘으면 안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게 아이와 떨어져 살던 해월은 아이가 7살이 될 무렵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성황당 고개를 넘게 되는데, 아이도 엄마를 보고 싶어 뛰어도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죽게 되었다. 해월은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을 하고 맙니다. 어머니와 아이의 슬픈 만남이 전해지는 상봉재을 지날 때 한번 쯤 모자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봉재에서 것대산으로 가는 길에는 제법 계단들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 그렇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산도 높지 않아 많이 힘들지는 않다. 것대산으로 가는 길에는 의자모양으로 생긴 신기한 소나무에 앉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고 수업시간에 들어본 적 있는 봉수대를 눈으로 볼 수도 있다. 것대산 봉수대에는 봉수 5개가 잘 복원되어 있다. 이 봉수대는 서울 목멱산(남산)으로 연결된다.  봉수대를 지나 것대산 정상을 가면 청주 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온다.

이곳에서 조금더 욕심을 낸다면 낙가산까지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다. 것대산에서 낙가산까지는 거의 산능선을 따라 걷기 때문에 힘들지 않고 낙엽과 흙이 만든 길은 푹신하기까지 하다. 나무 또한 울창해서 햇빛에 거의 노출되지  않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운 점은 낙가산 정상에는 통신탑이 자리잡고 있어 풍경을 망치고 있다. 그래도 도심 주변에 찾아가기 쉬운 산이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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