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장소로 유명한 곳, 청주의 정북토성을 오랜만에 찾았다. 청주를 대표하는 미호천과 무심천이 만나는 넓은 평야에 마치 가래떡을 네모나게 말아놓은 듯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성 주변으로는 벼들이 여물어 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황금색 들판으로 곧 물들어 성벽에 올라서면 석양과 어우러져 더욱 많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청주의 도심에서 빗겨난 행운으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소중한 곳이다. 서울의 풍납토성과 그 모습이 유사하지만 풍납토성은 안과 밖으로 아파트에 둘러싸여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위태롭다. 그러나 이곳은 자연과 어우러져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남아있다.
구름이 약간 낀 날씨여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큰 개를 몰고 와서 산책하는 가족과 곧 결혼할 것 같은 연인이 삼각대를 세우고 이리저리 사진 찍는 각도를 고민하는 모습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성의 안과 밖은 잔디로 잘 가꾸어져 있고, 성 밖으로는 성을 보호하는 해자가 듬성듬성 보여 옛 사람들이 전쟁을 어떻게 했는지 알려준다.
정북토성의 매력은 성벽을 한바퀴 도는 것이다. 성벽에는 나무들이 언제부턴가 자리잡음으로써 성을 지키는 듯, 성의 주인인 듯 서 있다. 이 나무들은 이곳과 어울려 사람들에게 인생샷을 선물하고 있다. 셩벽은 소나무에게 살아갈 터전을 만들어 주고 소나무는 정북토성을 외롭지 않게 하며, 석양은 소나무를 만나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느릿느릿 성벽을 따라 도는 시간은 마음이 시간과 같다. 서둘러 걸으면 금방 끝나버릴 시간을 느릿느릿 걷는다면 시간은 느릿느릿 뒤를 따라오면서 내 삶을 뒤에서 위로해준다.
이곳을 한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갈 때 쯤에도 여전히 연인은 사진을 찍기 위해 몰두하고 있었다. 겨우 10m 정도 이동했을 뿐이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둘이서 찍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짜증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한 사람이 서고 한 사람이 카메라 각도를 맞추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맞으면 나란히 서서 인생의 한 장면을 건저 올리고 있었다.
나는 웨딩촬영을 하지 않았다. 파주 헤이리 사진관에서 큰 사진 한장으로 삶의 한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제주도로 어디로 멀리로 가서 웨딩촬영을 하는 것이 세태라고 하였다. 이 연인들은 어떻게 했을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한 컷이 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연인의 사진 찍기 성공을 빌며 성밖으로 나왔을 때 성벽으로 연인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여러 모습으로 찍고 있는 것을 보면서 분명히 누군가가 함께 왔다면 성 밖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찍어 주었을 것이라 상상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는 누군가가 없었다. 우리 부부는 성벽에 선 연인의 모습이 너무 예뻐 보여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았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장의 사진이 나왔고 괜찮은 사진들도 보였다.
아내는 사진을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며 성벽 너머에 있는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연인들은 찍을 사진을 확인하고 있었다. 우리는 연인에게 다가가 성벽에 선 뒷모습이 너무 예뻐서 몇 장의 사진을 찍었고 마음에 들지는 모르지만 선뜻 주겠다고 했다. 연인은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들어했다. 속마음이 다르더라도 다행이다 싶었다. 연인들이 가지지 못하고 보지 못한 성벽 밖 연인의 뒷 모습과 순간의 장면을 그들이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들이 결혼에 성공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북토성이 지구가 태어날 때의 모습 그대로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듯이 연인들도 처음부터 서로가 함께였을 것 같이 평생을 행복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생뚱맞은 자리에 있는 정북토성처럼 생뚱맞게 남의 사진을 찍는 특별한 경험을 정북토성에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