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배우기와 내리 사랑

나는 운동 신경이 참 없다. 특히 발로 하는 것은 더욱더 그렇다. 더 큰 문제는 운동하는 것도 좋아하지는 않는다. 안 좋아하니 안하게 되고 안히니 운동 신경이 발전할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 보니 남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스포츠)가 없다. 직장에서 많이 하는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못하니 함께 어울릴 수가 없으니 동료와 함께 친해지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딱히 배울 생각도 없고 불편함이 없으니 더욱 운동을 멀리하게 된다. 이것도 유전인지 아들, 딸도 운동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행인 것은 운동신경은 없는데 운전은 할 줄 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조심조심하면서 자동차 운전을 한다. 그런데 오토바이는 타 보지 않아서 운전을 못한다. 그러니 오토바이로 배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자전거는 또 탈 줄 안다. 이러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 정도인건가? 그런데 자전거 운전의 성공에는 우여 곡절이 많다.


나는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를 다녔다. 전체 학년은 1개반만 있는데, 특히 내가 입학할 때는 학생수가 더욱 적어서 겨우 23명만 입학했다. 친구들은 학교가 있는 곳까지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버스가 다니는 곳에 사는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시골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을 때도 교통편이 마땅치 않은 친구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었다. 예나 지금이나 시골은 교통편이 참 불편하다. 그래서 어른들은 오토바이를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는 초등학교는 20~30분을 걸어서 다녔고, 중학교는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때 스쿨버스는 개인이 하는 것이어서 한달에 얼마씩 돈을 지불했다. 당연히 고등학교는 하숙생활을 하면서 고향집을 떠났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6살, 7살때 세발 자전거를 탄 기억 밖에 없다. 그것도 핸들이 조정안되는 자전거를 내리막길에서 신나게 타고 평지에 내려서 지전거를 들고 다시 타기를 반복했던게 내가 가지고 있는 자전거에 대한 첫 기억이다. 나는 친구에게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는 것을 배웠다. 뒤에서 잡아주고 자전거 패달을 밟다가 어느 정도 가면 뒤에서 손을 슬쩍 떼서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하는 자전거 배우기의 표본으로 배웠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두발 자전거는 탈 수가 없었다. 드문드문 자전거를 배웠지만 끝내 배우지 못하고 국민학교를 졸업했고, 중학교 때는 스쿨버스 타고 다녔고 배울 시간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다. 고모집에는 짐자전거가 있었지만 내가 타기에는 너무 커 보여서 타볼 생각을 하지도 못하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하나 구해오셨다. 주인 잃은 자전거를 하나 구해왔는데 집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없으니 창고에 박혀있었다. 그런 자전거를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때 집에 있으면서 심심해서 혼자 타고 넘어지를 반복하면서 몇발짝씩 앞으로 나가더니 어느 순간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집을 한바퀴 돌면서 실력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그냥 탈 줄만 아는 수준이었다. 등하교를 자전거로 하는 일은 없었다.


자전거를 탈일은 대학교에 가서도 없었다. 고등학교때는 학교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하숙집에서 지냈다. 당연히 걸어다녔고 밤에는 담을 넘었다. 대학교때도 학교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전거 탈일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경주로 답사를 가게 되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둘러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씽씽 타는데 나는 위태위태했다. 이때까지 자전거 의자로 높낮이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몰라 키 작은 나는 자전거를 타면 공중에 붕떠잇는 느낌이었다. 그러니 좁은 길을 갈 때 사람이 지나갈 때 핸들을 제대로 조정못해서 넘어지기 일쑤었다. 그런 나를 선배 한명이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속도에 맞춰 타도록 하는 배려를 받았다. 그 뒤로 자전거를 탈일 은 없었고 군대를 다녀왔다.


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하고 우연하게 자전거가 생겼다.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를 했다. 학교가 다행히 평지라 엄청 편하게 다녔다. 그런데 우리 과로 전과한 친구의 자전거와 어느 순간 바꿔 타고 다녔다. 친구의 자전거는 사슴 뿔처럼 손잡이가 되어 있는 것이고 나는 일자형으로 있었는데 친구 자전거가 나에게는 더 편했다. 그 자전거를 졸업할 때까지 타고 다녔다. 이때 자전거 타는 실력이 부쩍 늘었다.

아이가 생기고 그 옛날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 때처럼 학교 운동장에서 저전거를 가르쳐 주었다. 아들은 금새 자전거를 배웠고, 딸은 조금 더 큰 이후에 자전거를 배웠다.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손쉽게 배웠다. 좀더 여유가 생기면 자전거를 타러 다녀야겠다.


오랫동안 타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아버지가 우연히 구해준 자전거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자전거를 못타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의 구세주였다. 두 발로 걷고 두 바퀴로 세상을 살아가는 힘을 주셨다. 그런 아버지를 외롭게 해드렸고 어버지가 안 계셨을 때 비로소 나는 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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