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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Jan 25. 2024

저출산 이유야 많겠지만....

생각해 봤는데, 요즘 애 키우기 어렵다 어렵다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선택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인 거 같다.


나 어릴 때 학생들은 하교 후엔 놀이터나 운동장 농구장에서 놀았고 돈 쓰고 시간을 보낸다 하면 오락실이나 피씨방을 가는 정도였다.


물론 태권도, 피아노, 미술학원, 보습학원 등을 가는 애들이 있긴 했지만 하나 정도 다니는 게 평균이었다. 적어도 학원 뺑뺑이 도는 애는 못 본 거 같다.


여행도 강원도 계곡이나 바닷가 가면 준수했었다.

스키장은 좀 부유한 친구들이 갔던 거 같다.

해외여행은 진짜 흔치 않았었고.


장난감 종류도 많지 않았다. 전자기기는 말할 것도 없다. 휴대폰, 컴퓨터도 흔치 않았었으니까. TV 채널 개수도 몇 개 없었다. 만화는 그냥 투니버스 정도 있었나.


그래서 딱히 사고 싶던 물건이나 서비스도 없었고,

친구 사이에도 크게 비교할 만한 게 없었던 거 같다.

사실 있다 해도 시각적으로 별로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에 사진 기능 자체가 없었기도 했으니까.


근데 요즘은 어떤가.

옷, 자동차, 전자기기. 모든 물건들 종류와 브랜드가 엄청 많아졌다. 대형 쇼핑몰만 가면 매력적인 물건들이 넘쳐난다.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유튜브, 웹하드 같은 구독 서비스도 많아졌다.


여행은 좀 많이 가나.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자기가 간 나라를 줄줄 읊는 아이도 흔하다.


학원은 어떤가. 레고로 로봇 만들어서 코딩하는 학원, 논술 학원, 독서 학원. 필라테스, 요가, 주짓수, 펜싱, 크로스핏, 헬스, 드로잉, 줄넘기 학원까지. 참, 수영과 영어회화는 거의 필수 코스다.


아이들도 이런 다양한 선택지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

누가 뭘 샀고 어딜 놀러 갔고, 뭘 배우고 있고, 어느 집에 살고. SNS 다 하는 데 애들끼리도 모를 수가 없다.

만약 친구가 뭔가 사거나 배우면 따라 하고 싶은 마음도 들것이다. 비교도 할 것이다. 아직 어리니까 말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소비 수준을 맞춰줄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사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예 안 시킬 순 없는 거 같다.

그거 소용없는 경우도 꽤 많다는 거 부모들이 모르는 거 아닌데 그래도 시킬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야 친구 관계가 형성되니까.


물론 나도 내 아이에게 비교가 무익하며, 쓸데없는 소비를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겠지만, 그런다고 어린애가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지며 득도하는 건 좀 현실성이 떨어진다.

애가 어느 정도 나이가 먹으면 깨닫겠지만, 어릴 때, 특히 10대 때는 소속 집단의 영향이 더 크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나도 내 아이가 아이들, 그러니까 그들만의 사회에서 상대적 열등감 혹은 부족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다른 애들 다 패드로 공부하는 데 내 아이한테 "넌 공책 들고 다니렴" 할 수 있나. 애들이 다 블루투스 이어폰 쓰는데 내 아이한테 "넌 줄 이어폰 쓰렴" 할 수 있나. 다 운동 학원 하나 이상 다니는 데 내 아이한테만 "넌 공원 약수터가서 운동하렴" 할 수 있나. 친구들은 밥 먹고 음료에 디저트 먹으로 카페 가는데, 내 아이만 집 가서 물 마시라고 할 수 있나.


아마 난 못할 거 같다.


여하튼.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는데, 과거에 비해 너무 많은 다양한 물건과 서비스가 생겨났고 마케터들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다 자기 물건 자기 서비스를 구매하라고 손짓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껴가며 키워도 한계가 있다. 옛날 어른들이 "애들은 알아서 커!" “돈보단 사랑으로 키우는거지!” 라고 하는 말이 별 공감이 안되는 이유다.


이런 요소 외에도, 미래에 대한 경제적 불안도 한몫한다.

부모님 세대는 내가 회사에서 열심히 하면 어느 정도는 잘 살 수 있단 믿음이 있었다. 별 고민 없이 아이 둘 이상 낳았고, 20대 때 결혼했고,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노후는 어떻게든 해결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지금 세대는 국민연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알고. 출산율 뻔히 알고, 돈의 중요성도 부모 세대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있다. 미래를 막연히 긍정할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출산 선택하기가 쉽지 않긴 하다.


내 아이가 열등감을 가능한 적게 느끼며 크길 바란다.

아이가 나중에 커서  과거를 회상할 때"우리 집 가정 형편은 평범했던 거 같아. 막 부유하진 않았어도, 막 쪼들렸던 기억도 없던 거 같아"라고 말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훗날 늙은 부모를 경제적으로 부양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런데 이 바램. 과거에는 평범하게 보였던 이 바램이

더이상 한국에선 평범한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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