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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진로 교사의 어떤 하루 - 빅뱅, 코스모스, 별

by 해 말고 달

꽤 오래전 여행이지만 오랫동안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여행이 있습니다. 그해 여름, 무작정 울란바토르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몽골 초원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설렘이 있었고, 초원에서 아빠와 달리기 경주를 하고 싶다는 큰 딸아이와의 뜬금없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고, 한편으로는 매너리즘에 빠진 고등학교 직장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일단 틀에 박힌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니 좋았고, 산과 들판의 경관을 즐기며 걷는 트래킹 여행도 생각보다 너무 좋았습니다. 이슬비가 내리는 초원을 걸었고, 예쁜 꽃들이 피어 있는 여름 알프스 같은 산을 올랐고, 두 시간 넘게 말을 타고 다른 마을로 이동했고, 몽골 현지 음식 '허르헉'으로 저녁 식사를 했고, 게르에서 잠을 잤습니다. 공기는 깨끗했고 하늘은 높았습니다.

몽골에서의 대부분의 경험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신비하고 즐거웠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한밤중의 밤하늘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게르에서 잠을 자다가 깨어 밖으로 나왔을 때 목격한 밤하늘은 너무나도 신비롭고 경이로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별들이 있는 밤하늘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훌륭하고 장대한 광경이었습니다. 황홀했습니다. 아주 어릴 적에 살았던 산골 마을 밤하늘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었습니다. 누구라도 이런 밤하늘을 보게 된다면 우주와 인간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부터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나는 왜 사는 걸까요?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우리가 별에서 왔다는 말은 그저 낭만적인 수사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의 과학적 사실이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빅뱅과 별과 물질의 순환을 통해 이루어진 전 우주의 장엄한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러니 만약 하늘의 별에 관해 알기 원한다면 저 하늘을 보기 전에 먼저 거울 앞에 선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거울에 비친 당신은 우주 역사의 체현이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p200


수업 시간에 별 이야기를 할 때면 몽골 여행 이야기도 하고, 몇 권의 독서 이야기도 해주곤 합니다. 그중에서 <코스모스>가 교사 지도서라면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는 요약서이자 대단원 활동지입니다. <코스모스>를 어떻게 하면 잘 요약해서 들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호기심과 동기를 유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찾아낸 책이 윤성철 교수의 책입니다.

윤성철 교수의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처럼 우리는 별에서 왔고 별로 되돌아갑니다. 우주의 탄생은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주는 점보다도 매우 작은 크기의 압축된 상태에서 우연히 순간적으로 일어난 대폭발로 탄생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시작되었고, 공간이 만들어졌고 현재까지 우주는 팽창하고 있습니다. 적색 편이 현상, 우주배경복사 등 많은 증거들이 확보되면서 빅뱅우주론은 정상과학으로 인정받게 되었죠. 대폭발 이후 온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물질이 생성되었고, 별이 만들어졌고, 인간이 지구상에서 등장하였습니다.

우리 몸의 구성성분은 우주의 구성성분과 거의 동일합니다. 빅뱅에서 생성된 우주의 기본 원소인 수소와 별의 생성과 진화에서 만들어진 물질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윤성철 교수는 '우리 몸은 빅뱅의 순간을 기억하는 우주 그 자체인 동시에 별에서 온 먼지'라고 이야기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내가 우주와 동급이라니……

빅뱅은 우주의 생성과 진화에 관한 이론입니다. 별은 고정불변의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인도철학에서의 '윤회'와 같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별을 구성하는 원소는 우주와 동일하지만 똑같은 별은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을 구성하는 원소도 우주와 동일하지만 똑같은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별이기도 하고, 우주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여러분과 제가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라니……


코스모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보기도 하지만 소장 가치가 있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고 싶은 책은 꼭 구입해서 봅니다. 책에 줄도 긋고, 메모도 하고, 색깔 책갈피 스티커로 표시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완전히 저의 소유물이 됩니다. 마치 그 책의 모든 지식이 제 것이 된 것인 양 착각에 빠지고 기분이 무척 좋아집니다. 책이 한 권 두권 쌓여가다 보니 거실 한쪽 벽면 책장도 모자라 안방에도 책이 꽤 쌓이게 되었습니다. 거실 책장은 아이들 책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작년에는 작은 아이와 함께 거실 책장에 도서 한국 십진 분류표에 따라 스티커를 붙이고 분류하고 정리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책장의 400번 자연과학과 500번 기술과학 분야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고 자주 보는 책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현재적 위치를 우주적 관점에서 탐색하고자 하는 책입니다. 제가 접해본 모든 우주 과학 대중서는 이 책의 해설 편 같습니다. 이 책이 우주 과학의 바이블입니다. 원전이고, 성경입니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일반고에서 한창 고3 담임을 하고 있을 때라 시도는 했으나 사실 충실하게 읽지는 못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채사장의 <지대넓얕>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독서에 불이 붙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 궁금했던 부분을 다시 다른 독서로 깊이 읽어 보는 재미가 너무 좋았습니다. <코스모스>도 그때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코스모스> p37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 <코스모스> p65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우주 과학에 대한 책이기도 하지만, 제겐 철학 책이기도 합니다. 지식뿐만이 아니라 엄청난 지혜를 주는 책입니다. 인간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물음과 답변을 과학적으로 풀어낸 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철학이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지한 고민은 실사구시적이어야 하고,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스모스>가 그런 책입니다. <코스모스>는 진로 책이기도 합니다. <코스모스>는 자기 이해, 진로 목표 설정, 경로 설계, 준비와 실행, 피드백 등 진로의 과정에 많은 영감과 동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코스모스>는 사색하기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딱 좋은 책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 주기도 하지만 과학적으로 그 해답을 찾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술자리는 시간, 비용, 노력이 많이 들어가고 게다가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건강이 조금 안 좋아지고 어머니 돌봄으로 시간도 부족해진 뒤로는 독서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삶이 무엇인지 궁금한 데 아직까지 답을 못 찾으신 분이라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코스모스는 대중 과학서이지만 엄청난 시간과 방대한 분야를 넘나드는 책입니다. 청소년들에게도 참 좋은 책입니다. 무작정 두꺼운 책부터 시작하면 라면 받침대나 베개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도 있고, 독서 유튜브도 있으니 천천히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청소년을 위한 <코스모스>도 읽으니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수소의 재에서 시작한 인류는 광막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 지금 여기까지 걸어왔다.……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코스모스> p682


카오스는 그리스의 우주 개벽설에서,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를 의미하는데 혼돈이나 무질서한 상태라고 합니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 상태의 우주나 세계를 의미합니다. 2024년 말 우리나라의 정치나 사회를 보면 카오스 그 자체입니다. 질서와 조화가 없습니다. '다름'이 '옳고 그름'으로 둔갑합니다. 거짓 뉴스가 사실을 나무라고, 호통칩니다. 거짓말이 진실을 감추고 덮어버립니다. 자세히 따져서 바로 밝히는 것은 마녀 사냥으로 뭉개 버립니다. 사실은 감추어지고 진실 규명은 흐지부지 덮여 버립니다.

칼 세이건은 비판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론을 중요시합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는 사실을 확인하고, 영향과 원인을 분석하고, 합리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제시해야 합니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합의해야 할 때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모두의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모두가 다 필요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공존해야 번영하고 지속 가능합니다. '코스모스'처럼 질서와 조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모두가 <코스모스>를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더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채사장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에서는 미국의 물리학자 휠러의 '참여적 인류 원리'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우주는 관찰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존재한다는 주장을 이야기합니다. 마치 역사가 역사가에 의해 조명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되면서 존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처럼 우주와 같은 실재는 인간과 같은 의식적 존재에 의해서 존재론적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에 대한 의미와 가치는 누가 부여하는 것일까요? 우주와 역사에 대한 가치 부여처럼 인간의 가치도 의식적 존재인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 관찰하고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당신의 가치는 오직 당신만이 부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고귀한 존재이지만,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여러분은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한 번뿐인 인생이고, 한 번뿐인 여러분입니다. '재미'와 '의미' 사이에서 그 어디쯤을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무조건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거울을 보세요. 여러분은 OOO이라는 각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고귀한 우주적 존재를 데리고 잘 살아내야 할 운명과 과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한 순간도 스스로를 허투루 대하지 말고 항상 스스로를 귀히 여기십시오.

<코스모스>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남는 문장 중에 하나는 ‘코스모스의 대부분이 텅 빈 공간이기 때문이다.’입니다. 텅 빈 암흑의 공간에 여러분과 제가 기적처럼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꼭 기억하세요! 당신은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매우 특별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사실을요. 항성은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을 의미합니다. 인간도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암흑의 행성으로 살 것인지, 빛나는 항성으로 살 것인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가치를 마음껏 드러내는 빛나는 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아가 타인을 비추어 그들의 가치를 드러나게 하는, 더 빛나는 삶을 살기를 염원합니다. 하면 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해 왔던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리 인간은 이제 자신의 진화의 방향을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인간의 역사도 우주 역사의 일부이며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p267




[참고 자료]

윤성철,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21세기북스, 2020.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 웨일북, 2020.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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