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원형

by 경경 GyongGyong

왜?

왜 굳이 애까지 써가면서 뭔가를 쓰고 있는 걸까? 이 성가시고 귀찮고 궂은일을 왜 굳이, 우리는? 이유와 원인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왜냐하면 자연발생적으로 글을 쓰는 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쓸 무언가를 인식의 공간에 떠올리고 응시하고 써내기 위해서는 그냥 멍하니 펜을 끄적이거나 키보드를 두드린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숨을 쉬듯 그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가 되면 배가 고파지듯 글이 고파지는 것도 아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쓰는가?


써야 하는 이유는 있다.

마감일을 지켜야 하는 글쓰기, 발행일을 지키고자 하는 글쓰기는 누군가의 써야 할 이유이다. 글이 가야 할 곳이 있다.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밖에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감이 있기 전에도, 발행하기 전에도 이미 쓰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두 다르나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기 전에 우리에게는 글을 쓰는 행위가 이미 있었다.


글쓰기로 드러낼 때가 있다.

글들이 우리의 의식적인 쓰기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때는 어렴풋이 기억되기도 하고 기억되지 못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 쓰는 아이는 어쩌면 자신 안의 글쓰기의 원인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삶의 어려움에 부딪혀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을 때 토해내듯 아린 속을 글쓰기로 게워낸 이들은 자신 안의 글쓰기의 원인을 구체적인 시기나 사건으로 기억한다. 우리의 글쓰기의 발현에 대한 기억은 이 언저리쯤일 것이다. 이런 무의식에 가까운 글쓰기도, 의식된 글쓰기도 글쓰기의 원형의 발현이고 발아이다. 글쓰기의 원형은 이들 현상의 발원이다.


우리 안에 글쓰기가 있다.

글쓰기는 우리 안에 늘 있었다.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그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말로 생각한다. 인식 공간에서 각자의 말로 때로는 이미지로 사물을 떠올린다. 또한 이들을 바탕으로 각자의 개념으로 구성하고 인지한다. 이는 외부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 글을 쓰는 행위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안에는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로 짜인, 마치 종위 위에 또는 모니터 위에 쓰인 글이 존재한다.


나는 나를 모른다.

녹록지 않은 삶에 주눅 들어 혹은 의기양양하여 우리는 자신 외의 것들에 집중하고 근거하여 살아간다. 자신의 손으로 이룬 것이 자신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러나 우리는 안다. 혼자 삶을 마주하고 대면해야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바깥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그제야 우리 안에 무의식 속에서 또는 의식 안에서 쓰인 나만의 언어와 말과 이들로 짜인 자신만의 글(생각)을 마주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은 드러나지 못한다.


글쓰기는 어쩌면 숨쉬기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