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주장하고 싶은 것이 여럿 있지만 사실 드러내놓고 할 만한 이야기는 몇 없으며 그중에서 손톱만큼의 확신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외국어 학습의 종착역은 쓰기이다’이다. 학술적 근거는 전무하나 체험적 근거는 매우 견고하다. 개인적으로 매우 그러하였다. 그런데 이는 사실 글쓰기 책이 출판 시장에서 매우 인기 있는 주제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원어민이 자신의 모국어로 쓰기도 어렵다. 하물며 비원어민이 외국어로 무언가를 쓰려면 얼마나 더 어렵겠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얄궂게도 외국어를 오래 접하다 보면 종국에는 무언가 이 녀석으로 자신을 표현해 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것이 말을 잘하는 것이고 잘 쓰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영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애써 접해 온 외국어로 어느 정도 말은 하는데 그 정도로 쓰지 못한다. 물론 매우 뛰어난 사유 능력이나 문장 구성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조금은 양상이 다를 수도 있겠으나 경험치와 체험치를 근거로 보았을 때 현실은 역시 외국어를 한 정도로, 아는 정도로, 음성 언어로 구사하는 정도로 대부분은 그 정도로 잘 못 쓴다.
(*혹 다른 의견이나 경험치가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겸손히 배우겠습니다.)
써지지 않는 외국어 문장을 한탄만은 할 수도 없는 처지라 어찌어찌 나름대로 해보던 방법들이 있다. 혼자 해오던 방법이라 어디 근거된 원리가 있지는 않다. 그저 한번 드러내 놓고 주장하고 검증해 볼 요량으로 풀어놓는다.
머릿속에서 모국어로 구성한 생각을 외국어로 바로 순차적으로 변환해 본다. 변환된 외국어를 문자로 적어낸다. 처음에는 단어를 적어내는 수준서부터 괜찮다. 이야기를 들을 때 언뜻 마음에 걸린 단어를 외국어로 바로 메모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모국어 생각들을 외국어로 순차로 통역한 것을 짧은 문장으로 적어낸다. 예를 들어, 어제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 잠시 생각한다고 하자. 머릿속에서 생각을, 한국어로 문장을 구성한다.
‘어제 뭘 먹었더라…, 어제 낮에는 김치찌개 그리고 저녁에는 집에 들어가서 아내가 해 준 비빔밥 먹었었네.’
한국어로 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외국어로 순차적으로 바꾼다.
어제 뭘 먹었더라…, 昨日何食べたっけ…、
어제 낮에는 김치찌개 昨日のお昼はキムチチゲで、
그리고 そして、
저녁에는 집에 들어가서 夕飯は家に帰って来て
아내가 해 준 비빔밥 먹었었네. 家内が作ってくれたビビンパ食べたな(또는 ね)
긴 문장을 머릿속에서 순차로 변환하기는 쉽지 않으니 위와 같이 짧게 문장을 나누어서 한국어로 문장을 구성하고(생각하고) 외국어로 바로 이어서 변환한다. 이렇게 바꾸기 위해서는 먼저는 생각하는 뇌가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보통은 모국어로 생각을 문장으로 구성하는 것에 익숙하여 생각을 나누어한다든지, 나눈 모국어 생각을 외국어로 변환하는 데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과 연습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한 모국어 생각을 외국어로 순차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모국어에 대응하는 외국어 단어와 문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국어 생각을 외국어 문장으로 변환하려 할 때에 모국어에 대응하는 외국어 단어나 관련된 외국어 문법을 모른다면 변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국어 문장을 나누어 외국어로 바꾸려 할 때에 모르는 단어나 문법 사항이 있으면 해당 단어나 문법을 그때그때 바로 찾아보고서 파악한다.
위와 같은 방식을 통해 모국어를 외국어로 변환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시작인 모국어 생각, 즉 모국어로 구성한 문장이다. 생각을 모국어 문장으로 구성하지 못하면 당연히 외국어 변환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 돼버린다. 물론 이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어느 시기를 지나서 모국어를 통해서만 외국어를 습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 시기 이전에 외국어를 익히는 사람들은 다른 과정들을 거칠 것이다. 어쨌든 모국어 생각이 문장으로 구성되지 않으면 외국어 변환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선은 모국어로 생각을 구상하는, 생각을 모국어 문장으로 구성하는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외국어 문장을 구성하면 어느 시기까지는 외국어로 된 모국어 문장이 된다. 물론 올바른 단어나 문법으로 구성된 외국어 문장은 상호 소통의 충분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외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게 되는 욕구인데, 역시 원어민과 같이 순도 백 퍼센트에 가까운 문장을 또는 구어를, 구성하고 구사하고 싶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외국어 원어민들이 쓰는 말이나 문장을 습득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음성 문장을 많이 듣고 쓰인 문장을 책 등을 통해서 익힌다. 어느 정도 양이 쌓이거나 아니면 외국어에 대한 감각이 원어민에 가까워지면, 외국어 문장이 원어민의 문장에 가까워지며 처음 머릿속 모국어 구성이 조금씩 외국어 원어민의 구성에 가까워진다.
보통 외국어로 꿈을 꾸어 본 것이 외국어 습득 정도에 대한 하나의 잣대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원어민이 구성한 문장에 익숙해져 자신의 모국어 생각을 원어민의 문장에 가깝게 외국어로 구성하는 것과 외국어로 꿈을 꾸는 것과는 다르다. 모국어 생각이 원어민의 문장에 가깝게 구성되지 않더라도, 즉 모국어 생각을 단순히 외국어로 치환하는 정도에 있더라도 외국어로 꿈을 꿀 수는 있다. 이때 꿈속에서 구성된 외국어 문장은 원어민의 문장과는 어딘가 조금 다른 모국어 생각이 그저 외국어로 치환되어 있는 상태이다. 원어민의 문장으로 내 머릿속 모국어 생각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원어민의 말을 많이 듣고 또 많이 읽어서 내 몸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이렇게 외국어로 자신의 생각을 구성하고 쓰기에 익숙해지면 외국어를 정복했다는 자타의 찬사? 와 상응하는 보답들? 이 뒤따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 이는 물리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 확장되었다는 무언가 더 깊은 곳에 닿아 있는 재미나 기쁨, 보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왠지 더 큰 보상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었을 때만이 어디선가 누군가 이야기하는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디 원어민과 외국어 학습자 사이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싶다. 사실 모국어 화자 사이에도 진정한 상호 소통의 장벽이 될 수 있는, 외국어 학습자가 외국어와 원어민의 문화 등에서 느끼는 장벽과 같은, 각자의 언어와 문화와 관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뛰어넘어 서로 이해되기 위해서는, 왠지 하나의 외국어를 익히려고 할 때 흘리는 정도의 땀은 흘려야 되지 않을까 싶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