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고 체화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경험적인 고백이다.
끝 모를 양의 단어와 문장을 익히고 체화하는 일은 산술적이고 기계적이지 않아서 학습 과정에서는 이 어려움이 매우 크게 느껴진다. 배운 단어와 문장이 바로 체화, 즉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읽어 보고 말해 보고 들어 보고, 단어와 문장이 등장하는 실제 상황을 경험하고 체험하고서야 그 낱말 하나, 그 문장 하나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자기 것이 됨을 경험한다. 외국어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이 경험의 양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외에 특별한 지름길은 없을 듯싶다. 경험적으로 그렇게 판단된다.
말하다는 일본어로 이우(言う), 하나수(話す) 정도로 초급 과정에서 배운다. 그런데 한일사전을 펼쳐보면 이외에도 몇 가지 낱말이 더 실려 있음을 볼 수 있다 (파파고에 말하다를 쳐보세요). 그런데 정작 이 말하다는 뜻으로 일상의 관계에서 모어 화자가 많이 쓰는 단어는 샤베루(しゃべる)이다. 외국어 학습자는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 차이를 알고자 한다. 낱말들의 쓰임새를 더욱 주의 깊게 조사하고 살펴보게 된다. 책을 읽고 말을 들을 때에 앞뒤 문맥을 살피고 그 쓰임새의 차이를 헤아려 보려고 애쓴다.
그래서 배운 외국어 단어 하나와 문장 하나를, 현실 속에서 만나고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외국어 원서를 읽거나 외국어 모어 화자와 이야기하거나, 또는 모어 화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눈을 똥그랗게 뜨거나 귀를 쫑긋 세우고 읽거나 듣게 된다. 없던 집중력이 생기고 조금은 겸손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집중하여 놓치지 말아야 하고 가능한 한 받아들여 흡수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집중하고 겸손히 외국어 텍스트를 읽고 말을 듣는 사이에 텍스트 속의 낱말 하나하나를 듣고, 들려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언어에 대한 감각이 왠지 더 선명해짐을 경험한다. 또한 이 학습과 체화의 과정이 참 지난하기 때문에 그만큼 책에서 단어를 발견하거나 모어 화자의 이야기 속에서 문장 하나를 발견하고 내 것이 될 때 느끼는 신선함과 소중함은 모국어를 사용할 때는 채 느껴보지 못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선명해진 이해와, 낱말과 문장에 대한 감각의 변화는 본래 외국어 학습의 목표, 목적은 아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이 산물은 고맙게도 이후의 외국어 학습의 효율을 올려주고 모국어의 읽기와 쓰기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학부 졸업논문 제목이 <타노시이(楽しい), 우레시이(嬉しい)>이다. 번역하면 <즐겁다, 기쁘다>이다. 이 두 단어의 정밀한 뜻 해석과 문장 안에서의 쓰임새를 분석해서 정리한 내용이다. 뜻이 뻔하고 조사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던 이 두 낱말의 의미와 쓰임새를 비교하는 일을, 모어 낱말과 문장에 대한 무관심에 가까운 감각이었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낱말과 문장에 대한 새로운 감각, 소중히 여기는 감각이 뻔하디 뻔한 뜻의 이 두 낱말을 주의 깊게 보게 하였다.
외국어를 읽고 들을 때에 사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원어로 독서할 때에 뜻을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거나 듣고서 채 이해하지 못한 단어나 문구를 찾아보기 위해서 사전을 펼쳐본다. 물론 외국어 학습자의 외국어 구사 능력이 모어 화자에 근접하면 사전을 안 펼쳐도 읽고 들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동안 몸에 밴 습관의 인력으로 사전을 펼쳐보는 경우가 많다. 이 사전을 펼쳐보는 습관이 의외로 모국어로 독서할 때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러면 이전에는 그저 알고 있던 모국어 낱말의 뜻을 외국어 단어를 익힐 때와 비슷한 감각으로 살펴보게 되고 전과는 달리 더 선명히 그 뜻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그저 흘려듣던 모국어 화자의 문장도 외국어 문장을 듣고 익히던 습관대로 그 문장이 쓰인 앞뒤 문맥과 상황 등을 살펴보게 된다. 문장 역시 전과는 달리 더 선명히 그 쓰임새와 뜻을 인식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낱말과 문장을 주의 깊게 보며 관심을 가지고 한 발짝 더 다가가는 태도는, 굳이 외국어 학습이 아니라도 익힐 수 있다. 아마도 국어를 학습하고 연구하는 한국어 모어 화자는 일상적으로 이러한 관점과 태도로 모국어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싶다. 딱히 국어 학습자나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언어와 그와 관련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라도 낱말과 문장을 조금은 더 주의 깊게 대할 것이다. 아니 늘 그곳에 있는 사물과 현상도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하면 달리 보이게 되고 달라짐을 우리는 사실 일상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우연히 시작한 외국어 학습을 통해 낱말과 단어에 대한 태도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지게 되었고 이를 통해 모국어를 보는 관점과 모국어에 대한 감각이 더 선명해졌다. 하지만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을 통해서만 모국어와 언어에 대한 관점과 감각이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읽고 듣기 시작하면 낱말과 문장, 그리고 이야기들이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이고 들리게 된다. 그리고…, 이 주의 깊은 태도는 낱말과 문장의 세계 너머에서도 조금은 유효하고 유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