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경청이며 나눔이다

by 경경 GyongGyong

언제인가 한동안 서점에서 자주 눈에 띄던 책 주제 중의 하나가 듣는 힘(기쿠 치카라), 즉 상대방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을 수 있는 경청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른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지긋이 들어주는, 경청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경청이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자연스레 되는 것이 아님을 요사이 자주 경험한다. 아내와의 대화, 아이와의 대화, 지인과의 대화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내가 가진 경청력은 바닥임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가 아니다. 상대방이 이야기를 할 때엔 그저 자기가 쏠 이야기의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언제 쏘아야 하지라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상대의 이야기는 내 귓가 언저리에 닿기도 전에 재가 되어 흩어진다. 어른이 되었으니 그만큼 경험치도 많아졌고 상대가 하는 이야기는 별달리 감흥할 거리도 없다. 다 아는 이야기이다. 이런 대화에서 따뜻한 감정이 오고 가는 것을 바라기는 어렵다. 그런데 사실 상대방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나도 간간히 상대방이 쏜 이야기의 화살을 맞아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내가 한 말과 상대방의 이야기는 경청을 통해 서로에게 나누어져야 한다. 대화를 나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는 그런 의미일 것이다. 대화와 이야기가 나누어질 때 나와 상대방도 함께 나누어진다. 이렇게 서로를 나누었을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의 시위만을 팽팽히 당기는 긴장에서 자유로워져 나눔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나눌 수 있게 될까?


독서, 즉 책 속의 텍스트를 읽는 행위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것과도 같다. 책 속의 텍스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 한두 달 책을 붙잡고 잠잠히 읽는다. 이 읽는 행위가 시각과 뇌를 사용하는 행위이긴 하나 우리는 글자를 읽어 나가면서 동시에 사실 듣는다. 그래서 독서는 보기이기도 하지만 듣기이다.

책을 읽어 나가는 중에 이따금씩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는 밑줄을 긋거나 슬그머니 책 한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메모해 놓기도 한다. 무엇이 중요한 내용인 줄 인식하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밑줄을 긋고 메모했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책 속의 텍스트와 이야기를 잠자코 읽는 독서 행위는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상황과 닿아 있다. 지긋이 책 속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태도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잠잠히 듣는 태도로 이어진다. 10분 정도 가만히 책을 읽을 수 있다면, 1분 정도는 잠자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의 어딘가에 생기지 싶다.


책은 글쓴이가 자신의 말을 나누기 위해 세상에 내놓은 존재다. 우리가 조용히 독서할 때 책 속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나누어진다. 나에게 나누어진 책 속의 이야기에 대해서 나도 슬그머니 나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책 한편에 나의 생각을 메모하거나 책을 읽고 나서의 감상을 독서 노트 등에 기록하여 우리는 저자의 책과 저자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나눈다. 독서는 그래서 독자인 나와 글쓴이인 작가와의 나눔이다. 책을 펴고 잠자코 10분만이라도 책 속의 텍스트를 읽다 보면, 이런 나눔을 체험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한 페이지만이라도 조용히 앉아서 듣고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어쩜 우리는 듣고 나누는 그 페이지 수만큼 풍요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조용히 책장을 펼쳐서 경청과 나눔을 통해 그 가설의 진위를 이 가을에 한번 확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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