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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Lee Speaking Mar 10. 2024

글 쓰기에서의 박제와 빛

달리기, 샤워, 자연 속을 산책하기, 운전하기, 창 밖 바라보며 멍하게 있기, 독서, 일상 속에서 사람과 상황 관찰하기,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 보기. 불현듯 영감이 떠오르고 쓰고 싶은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들. 영감으로부터 뻗어 나와 빠른 속도로 질주해 나가는 생각을 작은 양동이 같은 메모장으로 받아내려는 시도는 언제나 대부분의 중요한 부분을 놓친 채 불만족스러운 몇 마디만을 남기곤 한다. 영감의 순간이 끝나고, 시간이라는 녀석과 동시에 자의식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시간과 자의식은 그 살아있던 녀석의 살을 파먹는다. 뼈마디만 앙상한 그 몇 마디 단어를 가지고서 어떻게든 쥐어짜 내 그 뼈속의 척수라도 취해보려 하지만 이미 영감은 마치 나를 희롱이라도 하듯이 사라져 버렸다. 남겨진 나는 어떻게든 말이 되는 소리, 그럴 듯 한 소리라도 내놓으려 안간힘을 써본다. 뼈대를 바탕 삼아 지난날의 경험과 기억들, 책으로 접한 지식들을 한 점 한 점씩 붙여 살을 더하고, 그 살을 논리라는 실로 엮어내어 바닷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던 영롱한 그 녀석을 최대한 복원하는 작업을 거친다. 작업 끝에 내놓은 결과물은 역시나 빛을 잃은 박제품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박제의 작업을 계속해나가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머금은 그 녀석을 있는 그대로 낚아 올릴 수 있는 능력이 길러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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