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좋다 빗소리가 좋다
빗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마음은 아련한 외로움의 비로 젖어든다.
아, 이 허하거나 짠하거나 생기롭거나
고독하거나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의 바다 속에 푹 빠져
그 느낌들을 가만히 누려본다.
외로워도 좋다.
이 거대한 히말라야 산중에
홀로 있다는 고독감이 그리고 그 고독감에
물을 주고 있는 이 빗방울과 거센 바람의
감촉이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감각을
더욱 깨어나게 하고 촉촉하게 해 주고 있다.
이 느낌! 이런 느낌과 하나 되어 충분히
온전히 느끼고 있는 이런 순간이 나에겐
그 어느 순간보다도 보배스러운 때다.
빗소리가 좋다.
조금 거세고 춥지만 바람도 견딜 만 하다.
게스트 하우스 건물 앞마당을 길 삼아 오솔길이
나 있고 그 건너편에 천막이 쳐 져 있으며
그 천막 아래로 의자와 식탁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천막의 끝자락
바로 아래는 천길 만길 낭떠러지다.
아니 낭떠러지라기보다는
저 아래로 가파른 다랑이논이 깎아지듯
절벽처럼 서 있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절벽 논 깊은 아래쪽에 설산의
영봉에서 녹아내렸을 회색 계곡 물줄기가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또 다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벽,
또 절벽 위에 아스라이 쌓여 있는 계단식 논과
드문 드문 민가 몇 채가 섬처럼 떠 있는 풍경.
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연주해 낸
풍경 위로 폭포수 같은 빗방울들이
오케스트라의 대 장엄을 완성한다.
따뜻한 짜이 한 잔에 몸을 녹인다.
마음씨 좋은 주인 할아버지,
할머님의 따뜻한 배려와 맛깔나게 차려주신
저녁식사의 행복함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아름다운 풍경이 속 뜰에 짠한
공간을 만들면서 아련한
고독 속으로 깊이 깊이 빠져들었을 터다.
할아버지의 입담과
따뜻한 관심 덕분에 한 채 밖에 없는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의 휑함과
녹록함이 점차 따뜻함으로 바뀌고 있다.
어쩌면 주인 할아버지 또한
나와 마찬가지 신세인 건지 모른다.
이 산에서는, 더욱이 이렇게 빗줄기가
붓는 날에는 여행자도
외롭고 산사람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외로운 농가, 외로운 노부부의
살림살이에 외로운 여행자 하나 더 끼어
자니 이 또한 풍요롭고 충만한 즐거움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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