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우리는 보고 듣고 맛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 첫 번째 작용,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그 첫 번째 작용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경험할 뿐이고, 일어날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첫 번째 작용 이후에, 이미 지나간 것을 내 식대로 이미지로 그리고, 해석하고, 분별한 뒤에 그렇게 스스로 분별해서 만들어 놓은 그림자, 상, 기억, 의식의 쓰레기를 붙잡고서는 '그것'이라고 동일시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진짜 생생한 실재는 잠시 생겨났다가 사라지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생생한 작용이 일어난 뒤에, 남은 그림자, 스스로 만든 거기에 대한 해석을 붙잡아 집착합니다.
A라는 경험, 작용은 이미 지나갔고, 그 뒤에 남은 A에 대한 나의 해석을 AA라고 해 보지요.
우리는 AA라는 그림자를 보고, A라고 여깁니다.
AA는 내가 만든 A에 대한 생각, 분별, 해석일 뿐이지, 진짜 A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여기는 것이지요.
진짜 A는 이미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없어졌어요. A의 일생은 끝났습니다. 더 이상 없어요.
그럼에도 AA라는 생각 속의 '거짓 A'를 붙잡고 진짜 'A'라고 여기며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바로 그 그림자, 해석, 분별이 불교에서 말하는 의식, 식(識)이고, 상(相)이며, 분별망상이고, 알음알이이며, 허상입니다.
우리는 눈앞에 드러나 있는 지금 이대로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 식대로 해석한 분별망상 속에서 그려진 그림자로 파악합니다.
유식무경, 만법유식이라는 말은 이처럼, 우리의 허망한 분별의식이 세상 모든 것을 허망하게만 파악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들입니다.
금강경에서는 바로 이 그림자, 상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바로 보면 곧장 여래를 본다고 하였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머리로 해석해서, 분별해서 보지 말고, 직접적으로 있는 그대로 눈앞의 당처를 그저 바라보세요.
있는 그대로는 언제나 눈앞입니다.
과거에 대한 모든 생각들은 전부 다 허망한 허상이고, 분별망상입니다.
이미 지나간 뒤에 남은 과거의 이미지를 그려놓고 지금 떠올리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오로지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 드러나 있는 이것만이 진실입니다.
매 순간 새로운 A가 찰나 찰나로 왔다가 가고 있지만, 그것은 찌꺼기를 남기지 않습니다. 그저 왔다가 갈 뿐이지요.
내 의식이 붙잡지만 말고, 그저 왔다가 가는 것을 경험해주고 허용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매 순간 참된 진실은 이렇게 드러나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대한 나의 상만을 취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면 곧장 진실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