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의 힘을 믿는다.
요즘 내 모습을 보면, 날 선 시선으로 무언가를 비판하려 하지도 않고, 나의 색을 뚜렷이 드러내려 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알고 있던 세상보다 깊고 복잡한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뾰족하던 생각의 끝을 살짝 뭉툭하게 만들어 다른 이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빠른 판단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천천히 바라보며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가고 있다.
남편에게 물었다.
"시간이 내 마음을 부드럽고 여유 있게 해주는 것 같아. 당신은 시간이 뭘 부드럽게 해 줬어?"
남편은 시큰둥한 말투로 아이패드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내 뱃살"
그래. 복근의 탄탄함도 부드럽게 바꿔주었지.
시간에는 묘한 힘이 있다.
숨만 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냈다고 생각한 하루도, 그 하루의 시간은 내 삶의 궤적에 무언가를 쌓아 놓는다.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쌓여가는 그 무언가는, 사람 사이에 정이라 불리는 마음이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명쾌함이기도 하고, 되새기기조차 싫던 쓰라린 아픔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부드러워지는 우리의 복근 위로 차곡차곡 쌓이는 지방이기도 하지.)
종종 요리를 하다 보면, 요리는 인생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이 들어간 요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묘한 매력은, 시간이 나의 삶에 쌓아놓은 그것들과 닮아있다. 당근, 양파, 감자, 소고기. 제각각의 맛을 내던 재료가 카레 가루에 파묻혀 보글보글 끓다 보면, 자기가 갖고 있던 특유의 맛과 향을 국물에 녹여내며 하나의 맛을 이룬다. 돼지족발의 단단한 살과 질긴 껍질은 끓는 물 속에서 여러 가지 향신채의 맛있는 향긋함을 품게 되고 입에서 살살 녹는 보들보들한 족발로 완성된다.
한 해라는 시간을 돌아보게 되는 연말이라 그런지, 시간의 따듯함을 쌓아 올린 요리를 하고 싶었다. 마침, 냉장고에 몇 주 전 마시고 넣어둔 레드와인 반병이 보여서, 마트에서 갈비찜용 소갈비를 사 왔다. 오늘 저녁은 레드와인에 조린 갈비를 만들어야겠다.
점심부터 장을 봐와 갈비 핏물부터 빼기 시작했다. 채소를 손질하고 볶고, 갈비 겉면을 노릇하게 구웠다. 어느덧 창밖으론 짧은 겨울 햇살이 바닥에 깔리며 사라져 가는 것이 보인다. 레드와인에 빠진 갈비가 냄비에서 보글보글 익어가며, 집 전체를 맛있는 향기로 채워가는 시간이다. 한 시간 반 후면 요리가 완성된다.
한 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고 헤어지기에는 좀 아쉬운 시간이지만,
갈빗살이 부드러워지기에는 딱 충분한 시간이다.
2인분 / 2시간*
(*갈비 핏물 빼는 2~3시간은 포함이 되지 않은 시간입니다.)
재료
갈비찜용 뼈가 붙은 갈비 6~8조각
양파 한 개
당근 (양파의 반 정도 양)
셀러리 (양파의 반 정도 양)
양송이버섯 5 개
토마토 페이스트 1 tsp
밀가루 1.5 tsp
레드와인 2 cup
물 1~2 cup
마늘 3~4쪽
생 타임 5~6줄기
월계수 잎 한 장
통후추 2 tsp
식용유
무염버터 1 Tbsp
소금/후추
(옵션) 파슬리, 함께 먹을 감자, 아스파라거스, 샬롯, 방울토마토 등등
조리법
갈비는 흐르는 물에 잘 씻어서 겉에 붙어 있는 뼛조각을 모두 떼어내 주세요. 혹시 갈비의 겉면에 기름이 너무 많으면 기름층도 칼로 잘라내어 주세요. 깨끗이 정리된 갈비는 큰 볼에 담고, 충분히 잠기도록 물을 부어서 위를 잘 덮어서 냉장고에 넣어 2~3시간 동안 핏물을 빼주세요. 중간에 한두 번 정도 나온 핏물을 버리고 새 물로 바꿔가면서 핏물을 빼주세요.
핏물을 뺀 갈비는 물에서 건져, 행주나 페이퍼 타월 위에 올려 겉의 물기를 말려줍니다. 갈비에 소금으로 충분히 간을 한 후,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살짝 두르고 겉만 노릇노릇 살짝 바삭해 보일 정도로 익혀주세요. 속까지 익힐 필요는 없어요.
양파, 당근, 셀러리는 모두 한입 크기로 자르고, 양송이버섯은 반으로 잘라, 갈비찜을 할 큰 팬에 버터 한 테이블스푼을 녹인 후에, 노릇하게 볶아주세요. 소금으로 살짝 밑간합니다. 여기에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살짝 타지 않도록 볶습니다. 밀가루를 골고루 뿌리고 1~2분 정도 중간 불에서 밀가루가 익도록 볶아주세요.
양파, 당근, 셀러리가 볶아져 있는 냄비에 겉을 노릇하게 익혀 놓은 갈비를 한 겹으로 깔아주세요. 위에 레드 와인을 한 컵 반을 붓고, 물을 부어주시는데요, 물은 갈비가 충분히 잠길 정도로만 부어주세요. 여기에 마늘, 생 타임 줄기, 월계수 잎 한 장, 통후추를 넣어주세요.
종이포일을 동그랗게 자르고 가운데 조그만 구멍을 내어서 갈비 위에 덮고, 불을 세게 올려서 국물이 한 번 끓도록 해주시고,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냄비 뚜껑을 덮고 불을 약하게 바꿔서 한 시간 반 동안 끓여주세요. 30~40분 정도 지났을 때, 냄비 뚜껑을 열고 혹시 국물이 너무 빨리 졸아들지는 않았는지 확인해 주세요. 갈비는 계속 국물에 잠겨 있어야 해요. 혹시나 물이 너무 빨리 졸아들 때는 물을 더해줍니다.
한 시간 반 끓인 갈비찜에서 갈비를 건져 놓고 종이 포일로 살짝 갈비를 덮어 갈비가 마르지 않도록 해주세요. 갈비를 끓였던 국물은 체에 걸러낸 후, 센불에서 3분 정도 끓여서 살짝 졸여줍니다. 이 졸인 국물은 소스 역할을 하기도 해요. 갈비를 다시 졸인 국물(소스)과 잘 섞어놓으세요.
그릇에 갈비를 소스와 함께 담고, 위에 파슬리를 올려 장식해 주세요.
감자를 익힌 후 버터와 섞어 으깬 감자를 만들고, 아스파라거스, 샬롯, 방울토마토를 오븐에 살짝 구워 함께 드시면 더욱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