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화학자 이야기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떠오르는 이름.

by 이선용

# 아침을 깨우는 향기


어제 사 온 우리밀 사워도우 한 조각을 토스터에 넣는다. 하리오 드리퍼에 종이 필터를 끼우고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며, 핸드드립용으로 로스팅된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적절한 굵기로 간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사워도우의 고소한 향기와, 따듯한 물과 만난 방금 갈아낸 원두가 풍기는 캐러멜 소스를 뿌린 산뜻한 과일의 향기. 매일 아침, 멍한 머릿속 먹구름을 걷어내는 햇살 같은 향기다.


향기로 후각을 자극하며 깨어나는 나의 아침. 나름 낭만적인 아침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낭만이란 것은 뭔가 어렴풋하게 대상을 이해하고 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무엇이든 그 속을 파고들어 저 바닥까지 들여다보면 퐁퐁 솟아오르던 낭만이라는 감정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매우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내 앞에 나타난다.


토스트의 고소한 맛과 향기, 커피의 쌉쌀 달콤한 향기의 정체도 마찬가지다. 이 향기가 무엇인지 궁금해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면, 매일 나를 깨우는 이 향기는 멜라노이딘(melanoidin)이라는 질소 고분자 화합물에서 나는 냄새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질소 고분자 화합물이 나의 낭만이었다니...




# 나의 낭만을 앗아간 첫 번째 화학자


1912년, 프랑스 로렌 지방의 낭시 대학교 (University of Nancy)에서 신장 장애의 원인을 연구해 오던 의사이자 화학자인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Louis-Camille Maillard, 1878~1936)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실험 과정에서 자신이 발견한 독특한 화학반응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다. '아미노산과 당의 반응: 체계적 경로에 의한 멜라노이딘의 생성 Action des acides aminés sur les sucres: formation des mélanoïdines par voie méthodique'이라는 제목의 이 논문의 핵심은 아미노산(단백질)과 환원당(포도당, 과당, 유당, 엿당 등등)을 수분이 적은 환경에서 함께 가열하면 최종적으로 멜라노이딘(melanoidin)이라는 갈색을 띠고 특유한 향을 내는 질소 고분자 화합물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지금을 사는 우리는 이 반응을 '마이야르 반응 Maillard reaction'이라 부른다.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는 이후 계속된 연구에서, 이 화학반응이 한계치를 넘어 계속 진행되면, 당뇨, 동맥경화와 같은 만성질환과 인체의 노화에 영향을 미치는 최종당화산물 (Advanced Glycation End-products, 줄여서 AGEs)과 같은 유해 물질을 생성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연구는 단백질-당분 사이의 순수한 화학반응에 대한 분석으로, 신장 장애, 당뇨병의 원인 등을 찾아내기 위한 연구였다.




# 2차 세계대전


1940년대 전 세계는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맞이하고 있었다. 삶은 감자를 으깨고 우유, 버터와 함께 섞으면 그만인 으깬 감자 같은 간단한 음식도 사치였다. 대신, 즉석 감자 분말(instant potato flakes)에 뜨거운 물을 붓고, 여기에 우유 분말과 마가린을 섞은 것으로 배를 채우며 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야 했다. 어떤 식재료든 말릴 수 있으면 말리고, 분말 형태로 만들 수 있다면 만들어 실온에서 장기간 보관할 수 있고, 간단히 조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1940년대 초부터 1950년대 초반에 걸쳐 분말 우유, 분말 달걀, 말린 과일과 같은 건조식품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는 먹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었는데, 장기 저장이 가능하다는 장점과 달리, 일정 시간이 지나면 식품의 색이 누렇게 변하고 곡물이 살짝 탄 듯한 특유의 향이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건조식품이 변질되는 원인을 찾는 연구가 곳곳에서 시작되며, 1912년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의 논문은 수면으로 떠오르게 된다. 식품에 열을 가한 후 건조하는 과정에서, 단백질(e.g. 우유 단백질)과 당분(e.g. 우유의 유당)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갈변을 일으키는 화합물인 멜라노이딘을 생성하게 되고, 이후에도 천천히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화학반응이 진행되고 있었다. 답은 마이야르 반응이었다.




# 나의 낭만을 앗아간 두 번째 화학자


1953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미국 농무부(USDA) 북부 지역 연구 센터.

화학자 존 E. 홋지(John Edward Hodge, 1914~1996)는 1940년부터 1953년 초까지 이뤄진 201개의 건조식품 갈변 현상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발표한 논문 '모델 시스템에서의 갈변 반응 화학 Chemistry of Browning Reactions in Model Systems'에서 마이야르 반응 경로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도식화한다. ‘홋지 도식 (Hodge Scheme)’이라 불리는 이 도식은, 열 건조식품을 넘어 단백질과 환원당이 공존하는 식품이라면 어떠한 것이든 열이 가해질 때 갈변 현상과 특유의 향기와 풍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마이야르 반응의 적용 범위를 거의 모든 식품의 요리 과정으로 확대했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스테이크의 크러스트, 노릇노릇 튀겨낸 감자튀김, 캠프파이어에 구워낸 겉바속촉 마시멜로, 잘 구워진 빵, 로스팅된 커피의 향기, 달콤하게 구워진 당근과 채소까지. 온갖 맛있는 맛과 향은 마이야르 반응의 결과물이다.




# 낭만 대신, 요리 팁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와 존 E. 홋지는 나에게 화학반응을 던져주고 낭만을 앗아갔다. 그렇지만, 괜찮다. 두 화학자가 던져준 화학반응에 대해 읽어가며 요리 팁을 얻을 수 있으니, 맛있는 맛과 향을 더 효과적으로 잘 낼 수 있는 팁을 줬으니... 그래, 고맙다.


먼저, 수분이 적을수록 마이야르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식재료 겉면의 수분을 제거한 뒤 열을 가하면 보다 맛있게 익힐 수 있다. 또한, 마이야르 반응은 알칼리성 환경에서 잘 일어나기 때문에 pH 6~10 정도의 알칼리성을 만들어 주면 좋다. 이보다 pH가 높아지면 쓴맛이 날 수 있다. 온도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섭씨 140~180도에서 잘 일어난다.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 이런 고온에 노출되거나, 180도를 넘어가면 인체에 좋지 않은 물질이 생성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마이야르 반응은 단백질이 환원당과 결합할 때 발생한다. 포도당, 과당, 유당, 엿당은 환원당에 해당하지만, 하얀 설탕은 비환원당이다. 기억하자 환원당!


더 맛있는 햄버거, 스테이크, 감자튀김, 채소구이를 만들 생각에 요리 팁을 적으면서도 벌써 신이 난다.

이번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이 요리 팁을 적용하는 것은 다음 글에서 이어가야겠다. 멜라노이딘 향기가 나는 따듯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다음 글 준비를 해야지.


사족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 (Louis Camille Maillard)는 따듯한 커피나 차와 잘 어울리는 조개껍질 모양의 달콤하고 촉촉한 마들렌 과자의 고향인 프랑스 로렌(Lauraine) 지역에서 태어났고, 존 E. 호지 (John Edward Hodge)는 달콤 새콤한 소스를 켜켜이 발라가며 천천히 훈연해 익힌 부들부들한 바베큐의 고향, 미국의 캔자스 시티(Kansas City)에서 태어났다.


* 제목 그림은 Google Gemini로 만든 AI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