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여렸고 잊힌 어린 왕자
대다수 어른들은 행복을 너무 멀리 있고,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작 그런 걸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밀어내는 모습들이 자주 포착된다.
'바빠죽겠는데 무슨 여가 시간이에요. 나중에 돈 못 벌게 되면 당신이 책임질 건가요?'
'어차피 실용적이지도 않은 거 해서 뭐 할래? 참 부질없다.'
'나는 당장 내 이득이 중요해! 내 미래가 중요해! 사랑 같은 거, 필요 없어....'
하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아직 세상에 때 묻지 않고 바라보는 눈의 아이처럼 행하고, 느껴주면 된다.
그저 울고 싶으면 울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오면 곧장 하고, 꿈이 있으면 꿈을 꾸는 것.
못이 박힌듯한 아픔을 마주하면 그 아픔을 버티려 애쓰지 말고 날 아프게 하는, 몸서리치는 못 들을 과감히 뽑고 흔적이 남은 상처를 보듬어주며 치유해나가면된다.
그 상태를 견디고자 하지 않는, 처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면 느껴질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이자, 단순한 형태의 행복이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 완강히 거부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행복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만들어낸다.
선택권이 존재한들 택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행복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좌절하거나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솔직하게 꿈이 있다고 고백하면 된다. 언젠가 그 빛을 다시 찾을 거란 소망으로 달려 나가면 된다. 아프면 그냥 너무 아프다고 인정해 버리면 된다. 실은 그것이 우리가 진정 말하고 싶은 마음 아니었던가? 우리는 늘 진심을 원하는 법이고, 내가 나로서 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아픔을 차마 인정하지 않는 그 마음은 또 다른 상처의 연장선을 잇기 싫었던 부단함 아닌가?
실은 누구 하나라도 붙잡으면서 엉엉 울고 싶은데
다시 사랑하지 못한다는 절망에 담겨있는 무기력과 허무함에 빠진 모습이 아니었는가? 나는 왜 비로소 나를 믿지 않았는지, 사실 누구보다 내가 내 편이 돼주어야 했는데 말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본래의 어린아이 때로 되돌아가보자.
그곳에 답이 보일 테다.
"중요한 것은 늘 눈에 보이지 않아."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