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전쟁중

CPTSD 극복을 위한 외부자극 훈련, 산책

by 민진성 mola mola

산책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같이 산택을 한 지 3주가 넘었다. 매일 1~2시간 가량의 산책을 하고 12,000보에서 20,000보 정도를 걷는다. 대략 하루에 13~15km 가까이 걷는다. 약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땀도 흘리고 바깥 사람 구경도 하고, 그런 와중에 여러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해두거나 정리해보는 것이 나름 재미가 있다. 걷는 것 자체의 뿌듯함도 있고 말이다. 또한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외부자극훈련이 필요한데 산책만한 훈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도서관이나 카페 따위의 폐쇄적인 공간에 들어가기에는 부담스럽고 외부공간에서 걷는 행위를 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걷다보니 걷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도 있다. 괜히 더 걸어보고 싶고, 조금만 조금만 하다보니 20,000보도 이제 거뜬히 걷는다. 웨이트운동을 할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약간의 근육통과 근육이 생기는 것 같은 감각도 마음에 든다. 물론 아직 체중이 빠진다거나 살이 빠지진 않았다. 그건 좀 서운하긴 하다. 그렇게 많이 자주 걸으면 좀 빠질만도 한데 말이다. 아무래도 해리감을 이겨내거나 불면증을 이겨내기 위해서 자꾸 뭘 먹는 습관 때문인 것 같다.



전쟁 징후

그런데 산책을 하다보면 금세 뒷목이 굳고, 어깨가 뭉친다. 그럼 자연스럽게 뒷목, 어깨, 등, 허리에 통증이 생기고 두통과 머리가 멍해지는 증상까지 따라오곤 한다. 이는 CPTSD의 주요 증상이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정신이 힘든 거면 그냥 마음 굳게 먹으면 되는 일이 아니냐고. 실제로 우리 엄마도 마음 굳게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많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정신질환이 중증도 이상이 되면, 정신적으로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니다. 실제 몸으로 그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신체화증상(somatization)이라고 한다. 심리적인 고통이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데, 심리적 스트레스, 외상, 불안, 억압된 감정 등이 두통, 어지럼증, 소화불량, 통증, 피로 등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내가 몸을 긁거나 극심한 멀미를 호소하거나 치통, 두통, 현기증 등을 만성적으로 경험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단순히 마음이 힘든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인 증상으로 발현이 되고 이것이 다시 삶을 어렵게 만든다.



전쟁이야.

특히, 나 같은 경우 산책 중 어깨와 뒷목 뭉침이 심하고 멍해지거나 두통이 심하다.

만성적 긴장이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 '뒷목-어깨-두피' 연결 축의 긴장이 고정되는 것이다. CPTSD가 있는 경우 몸이 지속적으로 경계상태에 들어가 있어 특히 트라우마 기억을 저장한 두정엽-후두엽-편도체 연결이 과활성화된다. 이럴 경우 몸이 무의식적으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어깨를 들고 뒷목을 조이고 머리를 숙이는 자세가 굳어진다. 결국 목덜미, 승모근, 측두근(관자 부위)이 만성적으로 뭉치게 된다.

목과 어깨가 경직되면 척추기저동맥(vertebral atery)을 압박한다. 이로 인해 뇌로 전달되는 산소량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는 배출이 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뇌가 멍해지고 기억력,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이다. 특히 전두엽의 기능 저하는 감정조절을 어렵게 만들고 판단이 흐려지게 한다.

산책 중 예측불가능한 자극에 노출될 경우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근육 수축과 말초혈관 수축을 유도한다. 이것이 머리로 가는 혈류가 줄고 두통을 유발한다. 긴장성 두통 또는 편두통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결국 만성적인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몸의 근육과 동맥, 말초혈관까지 모두 수축해 뇌로 향하는 혈류와 산소의 양을 줄이고 이로 인해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시야 뿌옇게 변하는 증상과 누가 망치로 때리는 듯한 통증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이유, 돌변에 대한 두려움

그럼 나는 왜 산책을 하면서 이렇게 만성적인 과도한 긴장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나를 쓸모 없는 인간으로 보는 것만 같은 과잉 해석 때문이다. 부정적 자기도식(negative self-schema)라고 부르는 증상이다. 자기 정체감 손상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CPTSD 환자들은 보통 어린 시절부터 '존재의 가치가 없다',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와 같은 생각들을 내면화된 신념으로 갖고 자란다. 그래서 산책처럼 단순한 외부 노출 상황에서도 남들이 나를 평가하고 있을 것이라는 과잉 해석을 하는 것이다.

또, 외상 후 과각성 상태(hypervigilance)의 일환으로 예측 불가능한 타인의 행동에 대해 공포를 느끼기 때문이다. 편도체(amygdala)는 위협을 감지하고 빠르게 경보를 울리는데, CPTSD 환자의 경우 이 경보 시스템이 예민하게 고정되어 있다. 주방에서 라면 끓이는데 화재경보기가 울려서 스프링쿨러가 작동해 홀딱 젖어버리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보면 된다. CPTSD는 단순히 과거의 트라우마 기억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위협이 지속되고 있다는 신체감각을 만들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가 잠재적 위협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나같은 경우 사람이 많은 곳보다 차라리 차가 많은 곳이 편하다. 차는 차체의 회전반경, 거리, 속도, 가속도, 방향지시등 등을 통해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고 주행방향이나 속도에 대한 규칙을 따르는 대상이다. 하지만 인도 위의 사람은 명백한 주행 규칙을 가지고 있지 않고 행동 패턴을 예상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 그래서 사람이 많은 곳을 걸을 때면 더 불안하고 신체화증상도 심해진다.



나홀로 전쟁

나는 이걸 '나 홀로 전쟁'이라 부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지만 나는 매일 외부 자극에 노출된 전쟁터를 걷고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최대한 피해다닌다. 특히 애완동물을 산책하고 있는 경우는 예측불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아예 같은 길로 걷지를 않는다. 다른 길로 가거나 반대쪽 인도로 건너가버린다. 마주 걸어오는 사람의 행동패턴을 예상하기 위해 걸음거리, 들고 있는 물건, 시선, 옷차림 등을 통해 저 사람이 갑자기 나를 공격한다거나 나의 앞으로 주행방향을 틀어 들어오진 않을까 경계한다.

나는 그렇게 매일 전쟁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걷는다. 왜냐하면 이건 회복의 루틴이기 때문이다. 이 반복이 쌓여 내 편도체의 반응성이 둔화되고, 교감신경의 과각성이 조금씩 가라앉을 것이라 믿는다. 근육통에 고생하면서도 무거운 중량을 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지금은 걷기만 해도 두통이 오지만, 이윽고 길을 걷다 마주치는 강아지를 보며 귀여움을 느낄 날도, 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상쾌함을 느낄 날도 오고야 말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는다.

이 전쟁의 목적은 하나 뿐이다. 이 전쟁을 멈추는 것.



#생각번호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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