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기 싫은 밤

나는 왜 매일 밤, 잠드는 걸 미루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약으로 잠을 청하는 밤

아직 CPTSD로 인해 생긴 임상적 질환의 정확한 진단명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당뇨병에 걸렸다 생각해보자. 그로 인한 합병증이 발병했는데 아직 그 진단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래도 정신질환은 환자의 개인적인 기억이나 생각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진단명을 찾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주요 우울장애일 수도 있고, 양극성2형장애(조울증의 일종)일 수도 있다. 그래서 적합한 약을 계속 찾고 있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처방받고 있는 것은 수면효과를 내는 약이다. 어느 순간부터 잠을 자는 일이 어려워졌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오히려 그 적막과 어둠이 너무 불안하고 초조해서 각성이 돼 버리는 바람에 잠을 잘 수 없다. 그렇다고 asmr이나 백색소음 따위를 틀어놓고 잠을 청해도 자야 한다는 생각에 예민해져서 그 소리가 짜증이 나 각성이 돼 버리는 바람에 잠을 잘 수 없다. 설령 어찌저찌 잠에 든다 하더라도 30분이나 1시간 간격으로 계속 잠에서 깬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밤동안 자다깨다를 고통스럽게 반복하다 결국 잠자는 것을 포기한곤 했다. 그래서 약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처음에는 수면제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수면효과를 유도할 수 있는 항우울제로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효과가 제법 좋다. 약을 먹으면 30분 내외로 잠에 들 수 있고,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으면 6~8시간 가량은 수면을 지속할 수 있다.



잠을 거부하는 밤

하지만 실제로 잘 수 있다는 사실과 별개로 나는 잠을 계속 거부하고 미룬다. 약 없이는 잘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설령 잘 수 있다고 해도 쉽지 않고 깊은 잠을 잘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수월하게 잘 수 있고 깊은 수면도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럼에도 나는 약을 먹는 것을 계속 미루고 미룬다. 늦어도 12시나 1시쯤 되면 자면 될 것을, 미루고 미루다 3~4시가 넘어서야 약을 먹고 잠을 청한다. 어떤 날에는 미루고 미루다 해가 뜨는 것을 보고야 만다. 그럴 날에는 밝아오는 새 날에 지장이 갈까봐 약을 먹지도 못하고 1~2시간이라도 어떻게든 잠을 자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약을 먹으면 잘 잘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약을 먹는 것을 자꾸 미루는 것일까??



잠에 대한 저항

잠은 '정지'와 '내려놓음'을 말한다. 하루의 일상을 정지하고 회복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트라우마나 불안이 있는 사람들은 멈추거나 내려놓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정작 무언가를 한다고 해도 잘 해내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다. 조용하면 잡생각이 몰려든다. 때때로 그것들이 나를 너무 무섭게 만든다. 어둠 속에서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고, 폐쇄적이고 안락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한으로 개방이 된 듯 불안 속에 빠진다. 하루를 끝내는 그 감각이 때로는 죽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의식을 꺼트리고 회복으로 전환하는 것은 마치 위기 상황에 나를 방치해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것은 '내가 나를 버리는 행위'라고 여겨진다. 마치 차가 많이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래서 너무 불안하고 초조하다.

무언가를 하는 것도 불안하고 초조하다. 만약에 내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에 노력을 시작하는 것조차 꺼려진다. 그래서 이것이 게으름인지 무기력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 알지도 못하는 감정 속에서 고통스러워 한다. 정작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것도 고통인데 일상을 정지하고 내려 놓는 것조차 고통스럽다면 이 삶은 고통으로 가득찬 것이 아닌가.



오늘을 붙잡고 싶은 마음

오늘이 이토록 고통스럽지만, 어쩌면 나는 이 고통에 이미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또, 이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예측가능하다고 믿게 만든다. 약을 먹는 순간 나는 예측 가능하고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던 오늘을 보내고 또다시 불확실하고 통제불가능한 내일을 맞이해야 한다. 사실 그렇다. 시간이란 인간이 정해놓은 수일뿐이다. 한 시간,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정부 인간이 임의적으로 편의에 따라 만든 것일뿐 자연상태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 년에 한번씩 시간을 옮기는 나라도 있고, 월마다 일 수가 다르기도 한 것이다. '오늘'과 '내일'이라는 것도 인간이 임의로 정한 상상의 규칙일 뿐이다.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예측할 수 있었다거나 이미 시간을 흘러보내 과거과 되어 버린 오늘에 안심을 하고 또다른 불확실성이 찾아올 내일을 불안해 하는 것이다.



오늘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의 강박이 있다. 정확히 어떤 것을 완벽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분은 확실하지 않으나,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강박적으로 완벽하고 싶다. 하루를 마치는 것에 있어서도 그런 경향이 있다. 오늘 하루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오늘 하루를 늘려서라도, 늦게 자더라도 무엇인가라도 더 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나는 게으름과 무기력, 공포 그 무엇 때문인지 무언가를 하는 것조차 힘들도 무언가를 하더라도 지속하는 일이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날들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비가 오지 않으면 산책을 하고, 글 정도만 매일 끄적여볼 뿐이다. 심지어 글 조차 완성하지 못한 채 중간에서 끝내는 것이 대다수다. 하고자 하는 공부나 일도 하지 못하거나 그냥 조금 살펴보다 끝난다. 그렇게 모인 시간들이 하루가 되면 대체로 나는 오늘도 하루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실패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잠을 미루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컨디션 악화나 늦잠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반복하게 한다.



잘 자길 빌어주는 사람

약이 나를 충분히 잘 잘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가 그 약을 먹는 것조차 두려워 한다. 어떻게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대상만 바뀐 것이다. 이전에는 잠을 청하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했다면 이제는 그 약을 먹는 행위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쨌든 잠을 취할 수 있다는 면에서 건강에 도움을 될 수 있겠지만 나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약만 먹어서는 수면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달라져야 한다. 일상을 마치고 회복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거나 하루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내가 해낸 것들을 생각하면 잠을 청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이 행동이 잘 개선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질병이고 병원을 찾고, 약을 먹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치료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다. 편한 지인들과 전화통화로 수다를 잔뜩 떨고난 날에는 약을 먹지 않아도 잠이 쏟아진다. 기꺼이 정해진 수면시간에 약을 먹고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청한다. 결국 정신질환의 가장 효과 좋은 약은 사람이다. 나를 나로 하여금 그대로 있어도 괜찮다 말해주는 사람, 당연히 괜찮아질 거라 응원하지만 그런 응원보다 오늘 하루 잠을 잘 자길 빌어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나 또한, 누군가의 잠을 빌어주는 사람이고 싶다.



#생각번호2025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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