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틀
“왜 이토록 사소한 말에도 무너질까?”
“왜 내 감정은 쉽게 불타오르고, 또 금세 꺼져버릴까?”
“왜 나를 소중히 여겨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망치고 싶어질까?”
이런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나처럼.
외상은 단지 전쟁이나 사고로 인한 ‘특정 사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서적 방임, 반복되는 무시, 사랑받을 자격 없음에 대한 학습,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던 기억...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천천히 무너뜨린다.
다중 외상(Multiple Trauma)이란 단일한 외상이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쳐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축적된 외상 경험_을 의미한다. 특히 아동기 외상과 성인기 외상이 서로 연결될 때, 그 사람의 신경계는 마치 '영원한 위기 상황'에 처한 듯 기능하게 된다.
이런 다중 외상이 남기는 흔적은 단일한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심리적, 신체적, 대인관계적 문제가 얽히고설킨 채 나타난다. 이를 다중 증상(Multiple Symptom)이라고 부른다.
1. 인지 영역: 끊임없는 자기 의심, 집중력 저하, 미래에 대한 무의미감
2. 감정 영역: 분노, 수치심, 슬픔, 무력감이 동시에
3. 행동 영역: 자해 충동, 극단적 회피, 고립, 과도한 방어
4. 신체 영역: 만성 긴장, 불면, 과민성, 감각 과잉 반응 나에게도 이 모든 것이 있었다. 혹은 지금도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성인인데 왜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해?”, “왜 저렇게까지 자기를 파괴하지?”
하지만 나는 안다. 치유받지 못한 아이는 언젠가 어른 안에서 다시 등장한다. 내 경우, 성인기에도 특정 상황이 닥치면 감정적으로 심각한 퇴행을 겪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공포나 수치 앞에서 나는 아예 ‘멈춰버리거나’, 현실감이 사라지는 해리(dissociation) 상태에 빠지곤 했다. 그것은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저, 감당하지 못한 과거가 지금의 나를 지배한 순간이었다.
심리학자 Judith Herman은 『Trauma and Recovery』에서 이렇게 말한다.
“트라우마 생존자의 자기 파괴는 자기 처벌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기 통제의 형태이다.”
또한 Lanius et al.(2021)은 다중 외상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에게서 정서 조절 어려움, 해리성 인지 왜곡, 신체 감각 과민, 공감과 거리두기의 양가성이 고루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나의 고통은 설명될 수 있었다.
내가 CPTSD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엔 내가 결함 있는 인간 같았다. 하지만 학문적으로 설명 가능한 구조를 이해하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보호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다. 외상은 나를 덮쳤지만, 회복은 내가 만든다.
회복은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작은 연결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반복이다. 한 줄의 글쓰기, 한 번의 산책, 한 명의 지지자, 한 번의 자기 이해.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역시, 그 회복의 어느 시작점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다중 외상-다중 증상 이론은 나의 삶을 단지 '힘들었다'로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왜 그렇게 되었는지, 그럼에도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당신도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너짐'을 병이 아니라 구조화된 반응으로 바라보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그리고 기억하자. 우리는 이해받을 필요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