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과 해리, 그리고 복합 외상이라는 이름의 퍼즐
어느 날 문득, 내가 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작은 말 한마디에 전신이 경직되고, 누군가의 무관심에 어릴 적 내가 되살아난다. 지금의 내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10살의 나, 혹은 5살의 나가 그 상황에 서 있는 듯한 기분. 이 감정의 회오리는 단순한 ‘예민함’이나 ‘감정 기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퇴행적 정서 반응”이며, 보다 정확히는 복합 외상(Complex PTSD, C-PTSD)의 주요한 양상이다.
외상 심리학에서 퇴행은 단순히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특정한 정서적 자극에 의해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외상 경험 시점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감정이 폭주하고, 몸이 먼저 반응하며, 이성이 마비되는 현상은 뇌의 편도체(amygdala)와 해마(hippocampus) 사이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해리(dissociation)로 설명된다.
외상이 저장되는 방식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과 감각의 조각들로 이루어진다. 이 조각들이 ‘닫히지 않은 파일’처럼 뇌에 떠 있다가, 유사한 정서적 자극을 받을 때 자동으로 열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고, 나는 더 이상 2025년의 내가 아니다.
너무 많은 외상이 반복되면, 자아의 경계가 무너진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이 무섭고,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의심스럽다. ‘남성성’을 가진 나를 부정하며, 무성적인 존재로 살아가고자 했던 시기도 있었다. 이는 자기 개념의 분열(self-concept disruption)이며, C-PTSD의 핵심 증상 중 하나다. 특히 아동기 학대는 정체성 형성기(pre-adolescence)의 뇌 발달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미국 정신의학회(APA)는 C-PTSD 환자에게서 대인관계 왜곡, 지속적 자책, 감정 조절 실패, 실존적 공허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한다. 이는 단순한 우울장애나 불안장애로 분류될 수 없다. 그것은 ‘나’라는 개념이 무너지는 경험, 즉 존재론적 흔들림이다.
감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피가 날 때까지 긁는 행동이 있다. 신체화(somatization)란 감정이 뇌에서 해석되기 전에 몸으로 드러나는 감정 반응이다. 이는 감정을 언어로 번역하는 신경 회로(전전두피질 ↔ 변연계)가 성장기에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긁을 때의 후련함은 일종의 해리성 정서 조절 기제이다. 감정을 해석하지 못한 채 신체적 자극을 통해 ‘감정의 배출구’를 찾는 것. 멈췄을 때 더 불안해지는 이유는, 신경계가 안전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성인기의 트라우마는 그 자체로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동시에 아동기 외상의 맥락 안에서 더 위험한 형태로 활성화되었다. 이중 외상(double trauma)은 단순 누적이 아니라 상호 강화(interaction effect)된다. 최근 정신신경면역학(PNI) 연구에 따르면, 아동기 외상이 있는 사람은 동일한 스트레스 자극에도 더 빠르게 자율신경계가 탈조절되고, 더 오랜 시간 해리 상태에 머문다.
내가 겪은 것은 단지 C-PTSD의 교과서적 사례가 아니다. 나는 회복을 향한 감정의 투쟁 속에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겨우 붙들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쓰는 이 글, 나의 언어, 나의 해석은 단지 병명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서사”이며, 진단을 넘어서는 회복의 서사다.
복합 외상은 존재 자체의 무게를 흔든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직시하고, 구조를 이해하고, 언어로 명명할 때 우리는 회복 기반의 정체성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나는 아직 여전히 무너지고 있지만, 무너짐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나는 회복 중이다.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