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이렇게 아픈 걸까

외상 취약성의 구조와 회복의 조건

by 민진성 mola mola

같은 경험, 다른 무너짐

누군가는 같은 일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고, 누군가는 그날 이후 끝없이 무너진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아픈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자기연민이 아니다. 트라우마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물음이다.



외상 취약성 이론: 구조로서의 무너짐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스트레스-취약성 모델(Stress-Vulnerability Model)’로 설명한다. 같은 외상에 노출되더라도 PTSD로 발전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 사이에는 신경생리학적 민감성, 개인 성격, 발달사적 애착 경험, 사회적 지지 환경이라는 네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차이를 만든다.

1. 생물학적 민감성 : 스트레스에 대한 유전적 반응 체계의 민감성, 특히 편도체·해마·전전두엽 간 신경망의 조절력 차이, 뇌는 ‘실제 위협’보다 ‘예상된 위협’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2. 성격 및 기질 : 높은 신경증 성향(불안, 걱정, 자책 등), 낮은 자존감, 높은 자기비판, 완벽주의, 감정 억제와 대인 불신 경향이 PTSD로의 이행률을 높인다. 3. 발달사적 애착 경험 : 안정 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회복탄력성이 높다. 반면, 어린 시절 외상(정서적 방임, 학대, 불안정한 양육)은 외상에 대한 방어체계를 미리 무너뜨려 놓는다.

4. 사회적 지지 여부 : 외상 직후 주변인의 반응이 향후 PTSD의 강도를 결정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 한 마디가 보호 요인이 되기도 하고 피해를 무시하거나 비난할 경우 2차 외상이 된다.



나는 왜 무너졌는가: 다중 외상, 다중 증상

이 이론은 내게 그대로 적용된다. 나는 단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보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 속에서 자라왔다. 어린 시절, 감정이 존중되지 않고 방임되거나 무시당한 경험, 반복된 대인관계 트라우마와 이중적 배신, 감정을 표현하면 공격받고, 숨기면 무너지는 이중구속(double bind). 그 위에 성인기의 폭력적 사건이 얹혔을 때, 나는 무너진 게 아니라 내 안의 모든 것이 해체되었다. 이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고, 극복하지 못한 “의지의 문제”도 아니다. 이는 내게 내면의 보호막이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를, 내 감정을, 내 경계를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CPTSD: 복잡한 외상의 이름

나는 복합외상후스트레스장애(CPTSD)의 전형적 사례다.

1. 정서적 해리 : 감정을 느껴도 내가 느끼는 게 아닌 것 같고

2. 자기파괴 : 나를 긁고, 밀치고, 무가치하다고 느끼고

3. 대인기피: 누군가 다가오면 긴장하고 멀어진다

4. 지속적인 수치심 : 내가 사람들과 다르고, 고장났다는 느낌 이 모든 증상은, 구조적 외상의 결과다.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된 무력감 속에서 무너진 자아의 구조물이다.



회복의 조건: 단순한 낙관을 넘어서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극복할 수 있다”고. 하지만 외상은 ‘기억’이 아니라 신경계의 흔적이다. 어릴 적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던 기억이 지금 누군가의 호의조차 ‘공격’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회복은 단순한 낙관이 아니다. 회복은 신경계가 다시 안전을 배우는 반복학습이다. 감정이 무너질 때 도망치지 않고 누군가가 다가올 때 ‘이번엔 다르다’고 믿어보는 수십 번의 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해주어야 한다.


“너는 약한 게 아니다. 너는 보호받지 못했을 뿐이다.”, “너는 이상한 게 아니다. 너는 너무 오랫동안 방치됐을 뿐이다.”



나의 말, 그리고 당신에게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도 완치되지 않았고, 지금도 감정이 무너지고, 지금도 두려움과 싸우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고통의 이유가 ‘나’라는 존재의 결함이 아니라, ‘누락된 보호’와 ‘반복된 무시’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오늘 하루를 살아낼 이유가 생긴다. 당신도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씩 살아질 것이다.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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