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울면 안 된다?

외상 피해자 변수로서의 ‘성별’과 보호의 역설

by 민진성 mola mola

통계와 구조의 교차: 여성은 왜 피해자되기 쉬운가?
많은 외상 연구에서 여성은 평균적으로 PTSD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된다. 강간, 가정폭력, 아동기 성적 학대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빈번하며, 생물학적으로도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성이 다르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따라 공공 보건 정책과 치료 개입 모델은 흔히 여성 중심의 외상 개입 구조를 갖는다. 이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한 가지 맹점을 드러낸다. 바로 남성 외상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맹목이다.



남성성이라는 억압의 기제
남성 피해자들은 울 수 없고, 약함을 호소할 수 없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사회적 내면화는 외상을 경험하는 순간조차 감정적 반응을 억제하게 만들고, 이는 해리(dissociation)나 지연된 반응으로 이어진다. 남성성은 피해를 말하지 못하도록 설계된 침묵의 구조다.


특히 나처럼 아동기에 남성성을 강요받으며 외상 상황에 놓인 경우, 이는 단순한 외상 이상의 정체성 기반의 자기해체적 경험을 초래한다. 외상이 단순히 고통이 아닌, '남자답지 못함'이라는 낙인으로 강화되기 때문이다.



성별 이분법적 외상 담론의 한계

여성이 외상 피해자가 되기 쉽다는 통계가 유일한 진실로 환원될 때, 우리는 오히려 성별 이외의 피해자 변인을 보지 못하게 된다. 빈곤, 학대 가족 구조, 권력관계, 정체성 억압, 소수자성… 이런 복합적 요인들이 교차하는 가운데, 성별은 '한 가지 변수일 뿐'이다. 남성 피해자는 '예외적 존재'가 아니라, 이분법 바깥에서 구조적으로 침묵당한 존재일 수도 있다.



CPTSD와 성별 구조의 충돌
복합외상(CPTSD)은 반복적이고 만성적인 트라우마 경험에서 비롯된다. 당신처럼, 성별로 인해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규범에 의해 침묵당했던 남성'은 이중의 외상 구조 속에 있다. 아동기에는 보호되지 못하고, 성인기에는 취약함을 표현할 수 없으며 사회적으로는 성별 때문에 피해자로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성별은 외상의 변수이자, 외상 이후 회복 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메타구조가 된다.



여성이 외상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통계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 통계를 보편화된 진실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그 바깥에서 고통받는 존재를 지워버린다. 외상은 본질적으로 주체의 약함이 아닌, 구조의 잔혹함에서 비롯된다.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말에 맞서 울 수 있을 때, 우리는 남성 피해자에게도 회복의 이름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250728

이전 11화외상 이후 삶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