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A 축, CPTSD, 그리고 내 안의 경계선
나는 오래도록 스스로를 "예민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아주 작은 변화에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낯선 소음에 귀가 곤두서며, 무언가 잘못될 것 같은 예감이 자주 찾아왔다. 그런데, 그런 예감이 맞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자주 맞았고, 자주 숨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기억은 몸에 남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신경내분비계에 남았다.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HPA axis)이라는 것을.
인간의 몸은 위협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트레스 상황이 감지되면 시상하부(Hypothalamus)가 신호를 보내고, 뇌하수체(Pituitary)가 이를 받아 부신피질(Adrenal cortex)에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라고 지시한다. 이게 바로 HPA 축이다. 몸의 방어체계, 생존 시스템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도망치고, 숨고, 싸울 수 있다. 하지만 이 회로가 지속적으로 과잉반응하면, 몸은 일상 속에서도 비상 상황이라 착각하게 된다.
이 회로가 나를 과민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트라우마가 이 회로를 고장 낸 것일까? 정신의학은 말한다. 이 둘은 순서를 알 수 없는 feedback loop이라고. 어떤 사람은 HPA 축이 선천적으로 과민해서 스트레스에 쉽게 반응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반복된 트라우마로 HPA 축이 후천적으로 과민해진다. 그리고 그 둘은 종종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이 중 어디에 속할까. 나는 피해자 성향(피해자변인)을 가진 인간이었던 걸까, 아니면 반복된 외상으로 기능이 망가진 것뿐일까.
정신의학 논문은 종종 "피해자변인(victim variable)"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엔 유전, 성별, 기질, 생물학적 민감성 등이 포함된다. 예컨대 여성은 평균적으로 외상에 더 취약한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남성이다. 그러면 나는 예외인가? 남성인데도 감정 표현을 억압당했고, 울지 말라고, 남자답게 굴라고, 강해야 한다고 요구받았다. 그런데 아이는 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몸은 아직도 위협을 기억하고 있다. 이쯤 되면, HPA 축의 과민성은 내 CPTSD의 ‘결과’이자 동시에 ‘조건’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나는 여전히 헷갈린다. 이 몸의 경계 반응이 내 본성인지, 학습된 반응인지. 하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이 신체는, 과거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 애썼다. 그리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 가끔은 과하게, 가끔은 너무 늦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 독자 여러분께:
HPA 축은 단지 생물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의 트라우마, 감정, 기억, 기질이 교차하는 가장 내밀한 교차로 중 하나입니다. CPTSD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교차로를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몸으로도 통과해야 합니다.
만약 당신의 몸이 쉽게 긴장되고, 늘 경계 상태에 있다면 그건 당신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당신의 몸은 아주 오랫동안 싸워왔습니다. 그 사실부터 인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그 회로를 다시 이해해봅시다. 내 안의 HPA 축을, 내 안의 싸움을.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