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늘 긴장하는가

HPA축과 코르티솔, 트라우마의 신경내분비학적 흔적

by 민진성 mola mola

경계하는 몸: 잠들지 못하는 뇌

“자는 동안에도 계속 긴장돼요.”

이 말은 단순한 불면이나 스트레스가 아니다. 이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 특히 **복합외상(CPTSD)**을 겪는 이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생리학적 특징이다. 이들이 느끼는 끊임없는 경계 상태는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몸 전체가 실제로, 호르몬 차원에서 경계 중이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은 바로 HPA축(Hypothalamus–Pituitary–Adrenal axis), 즉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이다.



HPA축이란 무엇인가?

HPA축은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 시스템의 중심축이다. 생존을 위해 고안된 고대의 시스템으로, 위험을 감지했을 때 아래와 같은 순서로 작동한다.

1. 시상하부(Hypothalamus):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CRH(부신피질자극호르몬 방출호르몬)를 분비

2. 뇌하수체(Pituitary gland): CRH에 반응하여 ACTH(부신피질자극호르몬)를 분비 3. 부신피질(Adrenal cortex): ACTH의 자극으로 코르티솔(cortisol)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 코르티솔은 혈당을 높이고, 면역계를 억제하고, 심박을 증가시키는 등의 반응을 유도해 위험에 대처할 준비를 하게 만든다. 이건 말하자면, 신체가 전시 모드에 진입하는 매커니즘이다.



CPTSD와 HPA축의 ‘오작동’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만성적인 트라우마에 노출된 사람들, 특히 어린 시절 학대, 방임, 가정폭력 등을 반복적으로 경험한 경우, 이 HPA축은 과도하게 활성화되거나, 반대로 무뎌진다.

대표적 이상 유형

1. 과활성화 : HPA축이 끊임없이 작동하여 지속적으로 코르티솔이 분비됨 → 잠을 자도 긴장, 자율신경계 불균형, 만성 불안

2. 탈감작 : 너무 많은 코르티솔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시상하부나 뇌하수체가 반응을 멈춤 → 무기력, 감정 둔화, 피로

즉, 트라우마는 HPA축이라는 정교한 생존 기제를 망가뜨린다. 그 결과,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우리 몸은 위기 상태를 시뮬레이션한다. 코르티솔은 마치 “불이 났다”고 외치는데, 현실은 평온한 방안이다.



코르티솔: 악당인가 생존 파트너인가?

코르티솔은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지만, 사실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코르티솔은 아침에 자연스럽게 분비량이 증가하며 우리를 깨우고, 신체의 리듬을 조절하는 필수적인 호르몬이다. 하지만 CPTSD에서는 이 리듬이 무너진다. 아침이 되기도 전에 이미 분비가 과도하게 되어있고, 밤에는 낮처럼 긴장을 유지한다. 이로 인해 “자는 데도 예민하다”, “잘 쉬어지지 않는다”는 상태가 지속된다.



그래서 나는 왜 이런가?

이 질문은 트라우마 회복 여정에서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다.
“왜 나는 자면서도 경계하는가?”,
“왜 아무 일도 없는데도 불안한가?”,
“왜 긴장을 풀면 더 불안한가?”

이 모든 질문은 HPA축과 코르티솔이 트라우마로 인해 재설정된 결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너는 이상한 게 아니라, 너의 몸이 과거의 위험을 현재에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회복의 방향: 몸과 뇌의 재신호화

HPA축의 회복은 단순한 인지치료만으로는 어렵다. 몸 자체에 안전하다는 신호를 새로 가르쳐줘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들이 도움된다:

1. 신체기반 치료(Somatic Therapy) : 몸 감각을 회복하여 HPA축의 반응을 낮춤

2. 심호흡/명상/요가 :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하여 코르티솔 분비를 안정화

3. EMDR : 트라우마 기억의 재처리를 통해 HPA축의 과활성 패턴을 해소



HPA축은 단순한 생리학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나의 몸이 위험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세상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어떻게 호르몬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회복은 곧 재신호화의 여정이다. “이제는 괜찮아”라는 말을 뇌가 아니라, 몸과 호르몬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여정이다.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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