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죽음은 우리를 무너뜨리는가?
중환자실 레지던트였던 이**씨는 말합니다. “심정지 환자는 수도 없이 봤지만, 그날은 손이 떨렸어요. 그 아이가 저를 보고 웃었거든요, 몇 분 전까지. 나중엔 숨도 쉬지 않더라고요. 살려냈는데, 결국 못 버텼어요.” 의사에게 죽음은 흔합니다. 통계의 일부, 질병의 종착지, 때로는 고통의 해방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죽음이 외상으로 남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죽음은 우리를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심리학에서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발생 조건 중 하나로 ‘통제감의 상실’을 지목합니다. 의사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예측 가능한 과정’으로 훈련받습니다. 환자가 사망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고 이것은 내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질병의 결과라는 인지적 구획이 있다면, 외상은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런 통제감은 HPA축(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 축)의 반응도 조절합니다. 예측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황에서는 코르티솔 분비가 빠르게 상승했다가 안정적으로 하강하며, 스트레스 반응은 일시적 수준에 머뭅니다. 하지만 예측불가, 통제불능 상황에서는 HPA축이 과활성화되고, 코르티솔이 만성적으로 분비되며, 기억, 감정, 자율신경계에 혼란을 유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료사고, 판단 착오, 오진으로 인한 사망 등은 ‘내가 죽게 만든 것’이라는 죄책감을 유발합니다. 이것은 도덕적 부채(moral injury)라고 불리며, PTSD보다도 더 깊은 자아 파괴를 유도합니다. 정신과 의사 존 브레슬러 박사는 이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가 자신이 믿는 도덕 기준을 배반했을 때, 외부의 고통보다 내부의 균열로 인해 무너진다." 이때의 고통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자아에 대한 불신, 자기혐오, 정체성 붕괴로 이어집니다. ‘나는 좋은 의사다’라는 내면의 신념이 깨질 때, 죽음은 한 사람의 삶을 빼앗는 동시에 남겨진 이의 정체성도 파괴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지만, 환자의 고통을 함께 느끼지 않는다면 돌봄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특히 소아환자, 말기환자, 장기입원 환자처럼 정서적 연결이 깊은 대상과의 이별은, 그 자체로 상실감을 안깁니다. “그 아이는 가족 같았어요.”, “임종할 때, 그 아버지가 제 손을 붙잡고 울더라고요.” 이런 순간은 '일'이 아닌 '인연의 끝'으로 기억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환자와 함께 감정의 끈을 묶고, 그 끈이 끊어질 때 정서적 충격이 뇌 깊숙한 곳에 흔적으로 남습니다.
놀랍게도, 많은 의료인들은 이러한 외상을 겪고도 다시 수술복을 입고, 진료실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때때로,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죽음들이 시간이 지나 폭발하듯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이를 ‘지연성 PTSD(Delayed-Onset PTSD)’라고 하며, 오랫동안 감정적으로 회피하던 기억들이 무의식 속에서 떠오르며, 수면장애, 무기력, 공황, 우울증으로 나타납니다.
의사의 PTSD는 자주 무시됩니다. “그게 직업이지”, “너무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마”라는 말로 덮이곤 합니다. 하지만, 외상은 그 직업의 책임과는 별개로 인간의 감정에 뿌리를 내립니다. 죽음을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죽음에 더 깊이 감염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공간과 들어주는 귀입니다.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