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말할 용기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생물학 기반 개입의 필요성

by 민진성 mola mola

‘특정 집단에 PTSD가 많다’는 말이 불편한 이유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통적으로 전쟁 경험자, 재난 피해자, 성폭력 생존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외상의 영향이 소수자 집단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통계도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지점이 있다. “왜 이 집단은 PTSD 비율이 높을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사회적 억압, 차별, 낙인이라는 해석은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생물학적 혹은 신경학적 차이의 가능성은 이야기하는 순간 금기를 어긴 듯한 공기를 마주하게 된다. 왜일까? 그건 ‘차이를 말하는 것’이 곧 ‘차별’이 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차이를 말하면 안 되는가?

예를 들어보자. 여성은 전반적으로 코르티솔 억제 반응이 남성보다 약하다는 연구들이 있다. 이는 스트레스 반응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생물학적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일부 인종 간에는 염증 반응, 신경전달물질 민감도, 유전자적 스트레스 회복 특성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말하는 순간, “그럼 여자가 더 나약하다는 말이냐”, “그럼 인종 간 열등함을 말하고 싶은 거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하지만 차이는 우열이 아니다. 구조다. 정확한 구조를 알아야 적절한 복구를 설계할 수 있다. ‘평등’을 핑계로 구조를 무시하면, 우리는 그 누구도 제대로 회복시킬 수 없다.



생물학은 억압이 아니라 복원이다

많은 치료 프로그램, 회복 가이드라인, 심리 교육은 '보편적인 인간'을 상정하고 설계된다. 하지만 인간은 보편적이지 않다. 남성과 여성은 외상을 기억하는 방식, 회복 과정에서 기대하는 지지의 양상, 약물 반응에 있어서 다르다. 특정 유전적 민감도를 가진 사람은 경미한 사건에도 외상을 입는다. 반대로 회복 탄력성이 유난히 높은 사람도 있다. 심지어 수면의 양상, 악몽의 반복성, 외상 재경험의 빈도까지도 체질과 성별, 생애 초기 경험에 따라 다르다. 이걸 '차별을 정당화하는 증거'로 볼 것인가? 아니면 ‘회복을 개인화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 우리는 후자를 택해야 한다.



진짜 평등은 ‘동일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존중하는 것’

지금까지의 평등은 대부분 "같이 대하자"였다. 하지만 진짜 평등은 "다르게 다뤄야 할 만큼 다르다는 걸 인정하자"로 나아가야 한다. 그게 바로 다름을 말할 수 있는 용기이며, 그 용기에서부터 맞춤형 트라우마 치료, 정밀 의료, 개인화된 회복 설계가 출발한다. 피해를 더 많이 받는 집단이 있다면, 그 구조를 드러내야 한다. 회복이 어려운 경로를 가진 개인이 있다면, 그 신체적·정신적 배경을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다름’은 차별의 도구가 아니라, 복원의 설계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차이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건 차이 없는 평등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는 정의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회복적인 사회가 갖춰야 할 첫 번째 태도다.




#202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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