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SD는 모태신앙이다

벗어날 수 없는 인식의 틀

by 민진성 mola mola

믿으려고 한 게 아니다, 이미 믿고 있었다

종교를 후천적으로 믿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모태신앙"이다. 태어나 보니 이미 부모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교회는 일요일의 기본값이며, 기도는 식사 전에 손을 모으는 행위 이상이었다. 그는 종교를 선택하지 않았다. 종교가 그를 선택해 있었다. CPTSD(Complex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또한 그렇다. 우리는 외상을 겪고 난 뒤에 아파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아픔이 이미 내면에 삽입되어 있다.



인식 그 자체를 감염시키는 구조

트라우마가 심리적 외상이라면, 복합트라우마는 존재론적 프레임의 오염에 가깝다. 사건 하나로 인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건이 반복되며 형성된 ‘세계에 대한 신념’이 나의 인식 그 자체를 재구성한다. 예를 들어보자. 타인의 미소는 "나를 비웃는 것"으로 해석되고, 나의 성취는 "운 좋았을 뿐"으로 치부되며, 관계는 "언젠가 파괴될 운명"으로 읽힌다. 이것은 단순한 비관주의가 아니다. 지각, 해석, 평가, 반응 모든 층위에 트라우마의 알고리즘이 심겨 있는 것이다. 마치 유아기부터 교리를 반복 주입받은 아이가 세상의 모든 현상을 성경의 렌즈로 해석하는 것처럼, CPTSD 환자 역시 세상을 ‘피해자 알고리즘’으로 인식하게 된다.



스스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

모태신앙을 벗어나는 것은 단순한 무신론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만든 세계'와의 결별이다. 그래서 죄책감, 불안, 존재적 해체감이 따라온다. CPTSD 회복이 어려운 것도 같다. 왜냐하면 트라우마는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의 구조 전체이기 때문이다. 즉,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나를 통해 작동하는 패턴"이다.



믿음을 해체하는 작업, 회복의 첫걸음

그러나 희망은 있다. 어떤 이가 모태신앙을 벗어났듯, CPTSD 환자도 자신 안에 구축된 신념체계를 비판적으로 탐색할 수 있다. “내가 이 반응을 하는 이유는?”, “이 감정은 과거에서 온 것은 아닐까?”, “지금의 현실은 과거와 같은가?” 이 질문은 믿음을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스스로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이는 회복이다. 그리고 그 회복은 철학적 작업이며 동시에 신경생물학적 회복과도 연결된다.



CPTSD를 벗어나는 일은 신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이 은유의 핵심은, CPTSD를 가진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데에 있다. 당신은 믿으려 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믿음 안에서 자랐을 뿐이다. 그 믿음은 당신을 생존하게 했지만, 이제는 삶을 제한하는 형태로 기능하고 있다. 이제 그 믿음을 벗고, 당신 스스로의 언어와 시선으로 다시 세상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50728

이전 26화하나의 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