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악의 실패로 구성된 삶에서도 성공을 위한 도전이 의미가 있을까?
오늘 문제집을 부여잡고 울었다. 맥락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이없는 소리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로스쿨 입시를 위한 LEET 문제집을 풀고 싶은데 너무 하기 싫어서 울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식욕이 없었다. 그때는 뭔가를 씹어도 고무를 씹는 거처럼 아무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먹기 싫었다. 배가 고픈데 먹기 싫은, 너무 답답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그때 전기밥솥을 부여잡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한테 이 소식을 전했더니 어이없어하며 웃으셨다. 그럴만하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되는데 이도저도 못하고 답답해 한다는 게 어이가 없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으면 공부를 하면 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데 이도저도 못하고 답답해 한다는 게 어이가 없다.
Maslow의 욕구 위계이론에 따르면, 생리적 욕구(배고픔)나 자기실현 욕구(로스쿨 진학)는 강력한 동기 요인이다. 이 두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저항(정신적 피로, 회피, 불안 등)이 생기면 충돌이 발생한다. 배고프지만 먹기 싫다는 것은 생리적 욕구와 정서적 저항이 충돌한 것이다. 로스쿨에 가고 싶지만 공부하기 싫다는 것은 자기실현 욕구와 실패에 대한 감정기억이나 정서적 저항이 충돌한 것이다. 이것은 접근-회피 행동(confilt of approach-avoidance)이라고 불리는 전형적인 심리학적 갈등 유형이다.
이전의 실패 경험은 뇌에 회피 학습 경로를 만든다. 고등학생 2학년 겨울방학부터 수능 한 달 전까지 하루에 1~2시간 자가면서 순공부시간 16~18시간을 채워가며, 중간중간 스트레스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응급실도 3번이나 잘 정도로 치열하게 공부했지만 정작 수능을 망쳤다. 재수를 했지만 또 수능을 망쳤고, 사실 삼수를 하고도 수능을 망쳤다. 물론 남들과는 그 기준이 달랐기에 재수 때도 그렇고 삼수 때도 그렇고 나름 좋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내 스스로는 실패했다는 감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사회적 성취를 포함해도 살면서 정말 간절히 원했던 일은 무엇도 이루지 못했다. 과학고등학교 진학이라든지 서울대학교 합격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말이다. 과학고등학교는 성적도 되고 준비도 됐었는데 정작 부모님은 문과를 바라셔서 그것을 반대하는 일이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웠다. 제대로 시도조차,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 외에도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는 것은 모두 실패했다. 물론 간절히 원해 노력했기에 차선의 결과를 얻었다거나 나름의 원하는 결과를 얻은 적은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삶의 궤적을 본다면 외적으로는 성공한 삶 혹은 나름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나와 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연세대학교를 졸업했다. 물론 지금은 CPTSD로 인한 증상이 심해져서 멈춰서 버렸지만 말이다. 지금의 상태를 제외하고서라도 나는 한 번도 내가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거나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삶을 살고 있다고 내면화하지 못했다. 늘 실패한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과학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해서 자사고에 진학했고, 서울대학교를 가지 못해 연세대학교를 입학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보면 배부른 소리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만큼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바쳐 노력했고, 실패했다.
Martin Seligman의 이론에 따르면 반복된 실패 경험은 ‘어차피 안 될 거야’라는 신념을 낳고, 그 신념은 시도조차 어렵게 만드는 무기력 상태로 이어진다. 작년에 엄마의 권유로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은 채로 LEET를 본 적이 있다. 당시 당연히 망쳤다 생각하고 원서 접수를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응시료가 하나에 25만원인데 가/나 군 총 2곳에 지원할 수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은 노베이스로 시험을 봤고 불확실한 확률에 50만원을 투자하기엔 너무 큰 돈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재미삼아 점수를 돌려봤더니 입결 최하위 로스쿨을 합격할 수 있었던 점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솔깃한 마음에 조금 공부해보자고 생각했다. 그 전 기출 문제를 집에서 풀어보니 점수가 제법 나왔다. 공부를 하지 않은 채로 입결 중위권 로스쿨에 도전할 수 있는 점수였다. 애초에 글을 읽고 이해하거나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잘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기본 적성이 있는 모양이었다. 마음 먹고 공부하면 어쩌면 제법 원하는 로스쿨에 진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솔깃했다.
다만 너무 공부를 하기 싫어서 울었다. 문제집을 부여잡고 울게 되는 건 이성적으로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정서적으로는 이미 실패한 미래를 선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하거나 있는 자원을 모두 쏟아 최선을 다했던 모든 순간에 실패를 했던 기억들이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기억된 감정이 현재의 행동을 마비시키는 상태다. 간절히 원하면 그만큼 실패를 했을 때 돌아오는 실망이나 좌절이 크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뇌는 크나 큰 위험상황이라고 인지하고 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애초에 간절하지 않도록, 내가 가진 자원을 모두 쏟아내지 않도록 계속 막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발전을 할 수는 없지만 큰 실망과 좌절로 힘들어지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뇌는 이미 벌어지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 사실 해결 방법은 안다. 실패를 하더라도 인생은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하면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을 얻지 못하더라도 차선의 것을 얻을 수 있음도 안다. 그 또한 충분히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그냥 하면 된다. 내가 두렵든 말든 그냥 하면 된다. 너무 두려우면 그냥 하루에 한 문제씩 풀기 시작하면 된다. 이것이 정론이다.
하지만 정론은 늘 어렵다. 세상의 대한 명확한 답을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적은 이유이다. 나는 너무 무섭다. 또 노력했다가 실패할까봐. 내가 또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보려고 하는 시도가 좌절되면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봐.
아니, 만약 성공을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내가 과연 일상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낯선 이들과 다시 신뢰하며 관계를 형성해갈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친화력 좋은 사람인양 사람 좋게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치아를 심하게 갈거나 물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도록 신경통이 심해지진 않을까? 세상의 모든 소리를 압도하는 이명과 함께 현기증, 호흡곤란을 동반해 주저 앉지는 않을까? 내가 인식하는 몸의 위치와 실제 몸의 위치가 달라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것 같은 극심한 해리증상으로 인해 심한 멀미와 호흡곤란이 찾아오진 않을까?
도전을 해야 성공도 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나는 실패에 익숙하고 늘 실패를 하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차악의 실패로 구성된 삶에서도 성공을 위한 도전이 의미가 있을까?
#202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