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다시 시작해야 할, 진짜 감정 마주하기
콜라를 좋아하는 편이다. 달콤하고 톡 쏘는 탄산이 웬만한 음식과도 크게 거부감 없이 잘 어울리고, 술을 마실 때도 섞어 마시기에 유용하다. 소주를 마실 때도 콜라만 있으면 안주가 크게 필요없다고 느끼곤 한다. 물론 안주가 있어야 틀림없이 더 맛있겠지만! 최근에는 다른 이유로 콜라를 좋아했다. 대체로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일상 속에서 콜라는 강한 자극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준다. 목이 따가운 느낌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태는 나에게 있어 죽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적당히 감수할 수 있는 통증은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 콜라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따라 콜라가 맛이 없다. 뿐만 아니라 정막이나 막연함을 두려워해 뭐라도 자극을 채우기 위해 듣는 음악이나 시청하는 영상들이 재미가 없어졌다. 기존에 나름의 재미를 느꼈던 것나 즐겼던 것들이 다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껴졌다.
몸과 마음이 외상 기억이나 스트레스를 피하려다 보니 정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특히 즐거움, 기대감 같은 긍정 정서부터 먼저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음식, 쇼핑 등에 느낄 수 있는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자극에 무덤덤해지는 시기가 찾아올 수 있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더 이상 콜라나 유튜브와 같은 즉각적 쾌락으로는 나를 유지할 수 없다고 인지하고 있다. 느리지만 진짜 감각, 진짜 감정, 진짜 회복을 뇌가 추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유튜브, 콜라, 자극적 대화 등은 기분이 좋아진다라기 보다는 느끼지 않게 하는 수단이었을 수 있다. 공허함이나 외로움, 무기력함, 미래에 대한 공포 등을 느끼지 않기 위해 채운 무언가들일 수 있다. CPTSD를 가진 사람의 뇐느 살기 위해 해리하거나 자극에 몰입하는 방식으로 특정 감정 회피를 회파고자 했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고 나서는 더이상 감정 회피로는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여 더 이상 회피 도구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뇌가 감각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 역설적으로 감각의 단절을 시도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더 센 자극을 찾는 것이다. 자극 절식으로 인해 기존의 것들에서는 즐거움을 느끼기가 어렵다. 느낀다 하더라도 공허함이 남는다. 그렇다면 그것보다 더 큰 자극을 주는 콘텐츠나 대상을 찾으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언젠가 또다시 자극 절기가 찾아오고 더 공허해질테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근본적인 해결이다. 오히려 내가 회피하고자 하는 진짜 내면의 감정과 마주하는 것이다. 공허함이나 외로움, 무기력함, 미래에 대한 공포 등을 마주하고 그것을 그 자체로 극복하는 것이다. 물론 즉각적인 재미를 느끼기 어렵고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집중력과 끈기가 부족해진 현재의 상태에서는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자극 절기는, 고장이라거나 오작동이 아니라 치유 시스템의 재가동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기존의 진짜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한 수단을 단절하고 그 감정들을 다시 느낄 준비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상당히 무섭지만 어쨌든 괜찮아지기 위해서는, 치유하기 위해서는 결국은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다. 그것을 지금 마주할 것이냐 또 언젠가일지 모르는 미래로 미루고 회피하느냐의 문제다. 솔직히 조금만 더 회피하고 싶은데, 더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숨이 막힌 것도 같다.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