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편한 밤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제 병원을 가기 위해 1시간 약간 넘는 시간동안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을 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별로 시끄럽게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이어폰 소리를 크게 틀어놓은 채로, 바깥 풍경을 구경하거나 상담에서 이야기할 내용들을 정리해보았다. 그러다 피로감이 몰려와서 잠깐 눈을 감았는데 그대로 잠에 들었다. 별 거 아닌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약간 놀랐다. 나는 집에서 잠자리에 누울 때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설령 잠에 든다고 해도 3~4시간은 계속 뒤척이는 시도 끝에서야 잠에 들곤 한다. 그런데 눈을 감은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잠에 든 것이다. 아무래도 시간 상 깊은 잠은 아니고 30분 정도 잔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도대체 집과 버스는 무엇이 다르기에 그렇게 쉽게 잠에 드는 것일까?
폐쇄된 공간에서 반복 진동을 경험하는 것은 안정된 감각 자극이 되어줄 수 있다. 차 안은 시각적 자극이 제한되고 소리도 일정하며 진동도 리듬감이 있다. 이런 환경은 외부 위협 가지가 줄어들어 방어 시스템이 풀리는 상황이 되어준다. CPTSD처럼 늘 경계 상태로 과각성 되어 있는 사람은 이런 환경에서 오히려 쉰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못하는 시각이라는 무의식적 허용을 하는 것이다. 차 안에서는 무언가 생산하거나 책임져야 할 일이 없다고 뇌가 판단한다. 움직임의 제한이 있고 차체가 계속 흔들리니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다. 버스가 운행하는 동안의 책임은 순전히 운전기사님에게만 주어진다. 나는 그저 운전에 방해되지 않도록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평소의 뇌라면 허용하지 않았던 멍 때리기라거나 수면이 가능해진다. 특히 지금은 어차피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상태는 수동적 상황은 오히려 심리적 여유를 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서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약간 어이가 없다 싶으면서도 늘 성취에 목말라 있지만 정작 실패라거나 일상복귀가 무서워서 이도저도 못하는 꼴을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생리적 자기보호 기제라고 볼 수도 있다. 평소받 위협감이 적은 상황에서 감각 시스템이 다운시프트 된 것이다. 어쩌면 증상의 악화라거나 증상의 일부라고 보기보다 회복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다. 직접적인 회복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회복의 수단이나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집에서는 잘 자지 못하는데 버스에서는 잘 잤다는 사실은, 반대로 생각해보면 집이 나에게 있어 충분한 회복의 공간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집에서도 과각성을 하고 위협상황으로 인지되는 순간이 많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는 폐쇄적이고 낯선 사람과의 교류가 버스보다 훨씬 더 차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은 왜 그런 걸까?
CPTSD, 우울 혹은 고밀도 자기 요구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공간의 의미 왜곡의 일종이다. 집이 쉼의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해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일찍 일어나서 새벽의 찬 공기를 맞으며, 해가 떠오르는 그 고양감을 느끼며 책을 읽거나 그 날 수업 내용을 예습하는 걸 좋아했다.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내가 더 성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그냥 그저 그 분위기가 좋은 탓일 수도 있다. 그럴 때면 아빠는 일이 나가시기 전에 꼭 내 방문을 살짝 열어 '오~'라고 하고 가셨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집중도 방해되었으며 꼭 내가 의무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번 아빠가 문을 열었는데 그날따라 내가 자고 있으면 그날따라 나는 나태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좀 쉬고 있으면 아빠는 늘 공부를 왜 하지 않느냐 다그치셨다. 그리고 때론 그것이 체벌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알아서 공부를 잘했고, 중학생 시절 전교권의 등수를 받아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알아서 늘 공부를 잘했다. 공부 자체가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시받는 느낌이었고 의무감이 생겼다. 그래서 아빠가 집에 계실 때는 늘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일단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게 너무 싫었다. 그냥 공부할 때 하고 쉴 때 쉬면 안되나. 과거의 나는 집에서 편하게 쉬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이런 경향은 트라우마의 트리거(trigger)가 발동된 이후 더 심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많은 도서관이나 카페, 단체 스터디 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것이 편해고 폐쇄적인 환경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통 기숙사 방 안이나 집의 방 안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했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집은 몰입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덧씌워져버렸나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간단하다. 집을 버스처럼 만들어버리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간으로 만들면 된다.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일들 따위는 모두 집 밖으로 내몰면 된다. 도서관이든 카페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대인기피 성향이 강하다. 물론 차차 노력하고 적응해야겠지만 지금은 좀 어렵다. 그저 산책을 하고 오는 것만으로도 두통과 심한 뒷목 뭉침 증상이 있다. 당장 집 밖으로 내모는 것이 어려우면 일단 방 밖으로 내모는 것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집에 누가 있을 때는 밖에 나가서 공부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일들이 쉽지 않지만 나혼자 집에 있는 시간에는 거실에 나가서 해도 될 것 같다. 그저 방 안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그저, 방을 나의 회복을 위한 공간으로만 두면 된다. 그럼 나도 남들처럼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2025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