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부·윤리의 뒤얽힌 관계
히어로물과 드라마는 종종 부자를 악역으로 그린다. 탑을 소유한 재벌, 도시를 장악한 CEO, 권력자와 결탁한 기업가. 반대로 가난한 이는 늘 순수하고 정의롭다. 하지만 나는 이 인과관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부가 사람을 타락시키는 게 아니라, 악한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은 곧 부를 낳고, 부는 다시 힘을 만든다. 그러니 부자 중에서 더 많이 보이는 악은 그들이 ‘강자’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권력을 “자신의 의지를 타인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키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부는 바로 그 능력을 실현할 자원을 제공한다. 부자 중 악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선택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사의 악역이 된다.
부는 힘을 준다. 시간을 살 수 있고, 기회를 살 수 있고, 사회적 발언권과 영향력을 살 수 있다. 문제는 그 힘이 악해서가 아니라, 책임이 비대칭적으로 커진다는 것이다.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은 정의로운 사회란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된 사회”라고 말한다. 부자가 악역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더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힘을 공공선에 쓰지 않을 때 집단적 배신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서사는 종종 약자를 선하게, 강자를 악하게 그려 균형을 맞추려 한다. 하지만 가난은 덕목이 아니고, 부는 죄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도 부패할 수 있고, 부자도 선할 수 있다. 다만 약자가 구조 속에서 강자가 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약자는 도덕을 통해 강자를 죄책감으로 묶는다”고 말했다. 서사 속 ‘가난한 자의 선함’은 종종 강자에 대한 도덕적 통제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통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다른 양극화만 만든다.
나는 부자가 악역으로만 그려지는 세계 대신 부를 가진 자가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를 원한다. 가난한 사람도 선하지 않을 수 있고, 부자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이야기. 그 속에서 힘과 윤리, 부와 책임의 관계를 더 정교하게 질문할 수 있는 이야기. 아렌트(Hannah Arendt)가 말한 것처럼 악은 괴물의 심장이 아니라 “평범한 선택들의 누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는 악해서가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서사의 타깃이 된다. 그 힘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변화의 가능성이다. 나는 이제 부자를 미워하는 대신 그 힘을 어떻게 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가진 힘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기를 꿈꾼다.
#생각번호202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