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강자·약자 모두 악할 수 있다

by 민진성 mola mola

악은 피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악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악은 피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악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순간부터 이미 싹튼다. 피해자가 없으면 악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피해가 생기면 악은 비로소 이름을 갖는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경계는 절대적일 수 없다. 악은 본질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역할이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윤리란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나의 행위가 타자에게 닿는 그 순간, 나는 이미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된다.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이익 추구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가능성을 내포한다.



강자만 악한가?

많은 서사는 강자를 악역으로, 약자를 선역으로 배치한다. 하지만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강자와 약자는 다르지 않다. 차이는 파급력이다. 강자의 이익 추구는 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더 큰 피해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강자의 악이 더 커 보일 뿐이다. 약자의 악도 존재하지만, 규모가 작아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선악의 저편』에서 “선과 악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힘의 관계에서 생겨난 구분”이라고 했다. 강자의 악이 더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그들의 힘이 크기 때문이다. 악은 그 힘의 크기만큼 증폭될 뿐, 본질은 강자·약자 모두에게 동일하다.



윤리의 새로운 질문

만약 악이 이익 추구 그 자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내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밥을 먹고, 안전을 지키고, 사랑을 구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다칠 수 있고, 그 순간 나는 악인이 된다. 이 지점에서 윤리는 “선을 추구하라”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라”로 바뀐다. 칸트는 “네 행위가 보편 법칙이 될 수 있는가”를 물었지만, 나는 묻고 싶다. “내 이익 추구가 만든 피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윤리의 과제는 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악을 감당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나의 결론

나는 이제 악을 미워하기보다 악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다. 내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타인의 삶이 너무 크게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방법을 고민하고 싶다. 악은 우리가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성숙한 윤리의 출발점이다.




#생각번호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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