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합의된 악이다

절대 선이 없는 세계에서 윤리를 다시 묻다

by 민진성 mola mola

모든 개체는 악하다

나는 이제 절대 선을 믿지 않는다. 모든 개체는 악을 가지고 있거나, 어쩌면 악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나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내가 밥을 먹고, 숨 쉬고,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순간 나는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다. 악은 피해를 줄 때가 아니라, 내 이익을 추구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선악의 저편』에서 “선과 악은 힘의 관계가 만든 구분”이라고 했다. 이 구분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저 그 시대·그 사회에서 합의된 방식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선’이라 부르고 합의 밖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자를 ‘악’이라 부르는 것뿐이다.



선은 합의된 악이다

그렇다면 선이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선은 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악을 서로 합의 가능한 형태로 조율한 결과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는 자연 상태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보았다. 그 투쟁을 멈추기 위해 인간은 사회계약을 맺고 주권자(리바이어던)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우리가 위임한 것은 “선”이 아니라 서로가 감당 가능한 수준의 악이다. 그 악을 우리는 편의상 ‘법’과 ‘질서’라 부른다.



합의의 윤리, 책임의 윤리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는 윤리를 “타자의 얼굴 앞에서의 책임”으로 보았다. 나는 이 책임을 내 악이 만들어낼 파급에 대한 책임으로 읽는다. 윤리의 과제는 더 이상 “착해지는 것”이 아니다. “합의 가능한 악”을 만들고 그 악을 책임지는 것이다. 내 악이 너무 커져 타인의 삶을 짓밟지 않도록 줄이고, 타인의 악이 나를 압도하지 않도록 서로의 악을 조율하는 것. 그 과정이 바로 정치이고, 법이고, 사회다.



내가 꿈꾸는 윤리

나는 이제 선을 좇기보다 내 악을 직면하고 싶다. 그 악을 감추지 않고, 다른 사람과 맞춰보고, 같이 짊어질 방법을 찾고 싶다. 윤리란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악을 감당하는 법을 배우는 일. 나는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나의 악을 길들이고 있다.




#생각번호20250917

이전 18화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