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와 절대선, 절대악

나는 이제 선을 믿지 않는다

by 민진성 mola mola

트라우마의 가장 아픈 질문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누구나 같은 질문을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처음엔 가해자를 절대 악마로 본다. 세상이 무너지고, 세상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나를 다치게 한 사람은 악이고, 나는 피해자이며, 악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단순한 구도가 버겁다. 악마처럼 보이던 그들도 결국 자기 이익을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택이 나를 다치게 했지만, 그 선택은 그들 인생의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다.



절대 악은 없었다

나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겪은 고통은 ‘절대 악’의 결과가 아니다. 그들은 악마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추구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 역시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내가 밥을 먹고, 숨 쉬고, 사랑을 구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몫을 빼앗는다. 악은 피해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악은 이익 추구의 순간부터 이미 싹트고 있다. 우리는 모두 악을 가지고 있다. 차이는 규모와 파급력일 뿐이다.



선은 합의된 악이다

그렇다면 선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선은 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악을 서로 합의 가능한 형태로 조율한 결과다. 우리는 각자의 악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윤리를 합의한다. 그 합의점을 ‘선’이라 부른다. 선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저 공통의 악이 일시적으로 균형을 이룬 상태일 뿐이다.



치유가 된다는 것

이 인식은 나를 해방시켰다. 가해자를 절대 악으로 보지 않으니 분노와 공포가 조금씩 중립화되었다. 세상을 다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구조를 바꾸고 싶은 내 시선조차 절대 선은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아니라, 나 자신의 악을 관리하고 다른 사람의 악과 합의점을 찾는 사람일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을 떠맡아야 한다는 부담이 줄어들고 내 삶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



윤리란 악을 감당하는 법

윤리란 착해지는 것이 아니다. 윤리란 내가 가진 악을 직면하고 그 악을 어떻게 다룰지 선택하는 것이다. 내 악이 타인을 압도하지 않도록 줄이고, 타인의 악이 나를 파괴하지 않도록 경계하며, 함께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 치유란 바로 그 과정을 시작하는 일이다. 나는 이제 선을 좇기보다 악을 감당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상은 조금씩 다시 안전한 곳이 된다.




#생각번호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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