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강자가 되려면

히어로의 폭력은 정당한가

by 민진성 mola mola

빌런은 구조의 아이

빌런은 종종 오랜 시간과 집착으로 힘을 쌓는다. 마블의 타노스는 우주의 자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논리 끝에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그의 여정은 수십 년에 걸친 것이다. 그들은 사회가 허용한 규칙 안에서 강자가 된 존재다. 그들의 타락은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구조의 모순을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악을 “괴물적 의지”보다 구조적 평범함으로 설명했다. 빌런의 등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허용하고 방관한 문제의 귀결일 수 있다.



히어로는 구조의 변칙

히어로는 그 질서를 뛰어넘는다. 법도, 절차도 건너뛰고 개인의 신념으로 세상을 바꾼다. 배트맨은 사적 폭력을 통해 범죄자를 처단하고, 스파이더맨은 제도보다 먼저 움직인다. 그들은 결국 “누구도 선출하지 않은 권력자”가 된다. 미셸 푸코는 권력을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망”이라고 설명했다. 히어로는 이 관계망을 흔들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지만, 그 질서 역시 민주적 합의가 아닌 개인적 신념에서 비롯된다. 결국 책임의 주체가 모호하고, 새로운 불균형을 만들어낼 위험이 있다.



정당성의 질문

존 롤즈(John Rawls)는 『정의론』에서 정의로운 사회란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된 사회”라고 말했다. 히어로의 정의는 과연 이 조건을 충족하는가? 나는 묻는다. 정말 정의롭고 싶다면, 왜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가? 왜 제도 안에서 힘을 기르고, 왜 합법적 절차를 통해 강자를 단죄하지 않는가? 히어로의 방식은 드라마틱하고 즉각적이지만, 결국 세상의 질서를 왜곡하고 다른 종류의 강자를 탄생시킬 뿐이다.



트라우마 이후의 시선

CPTSD를 겪는 나는 폭력의 정당성에 더 민감해졌다. 어릴 때 나를 다치게 한 사람도 강자였고, 나를 지켜주지 못한 사람도 강자였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강자가 되기보다 강자의 책임을 묻는 사람이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를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에게 정의는 복수가 아니라 균형 회복이다. 폭력을 폭력으로 덮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질서를 다시 세우는 것.



내가 바라는 정의

나는 순간의 복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의를 원한다. 구조 속에서 힘을 기르고, 그 힘으로 모순을 바로잡고, 누구나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 히어로가 아니라, 어쩌면 현실의 히어로의 쓸모를 죽이는 빌런이는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정의의 모습이다.




#생각번호202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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