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의 언어로 버티는 존재, 빚의 심리, 두려움이 만든 놓친 기회
아버지는 말했다. “상속세가 너무 높아. 정부가 다 뺏어가.”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과세표준을 생각하면 수십억대 자산가에게나 해당하는 세율이었다. 우리 집은 그런 집이 아니었다. 은행 대출도 있고, 증여세 걱정할 만한 자산은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세금을 걱정했다. 마치 그것이 “부자로서의 권리”라도 되는 듯이.
경제심리학에서 이런 현상을 “Defensive Inflation(결핍의 과장)”이라 부른다. 즉, 통제 불가능한 불안을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옮겨 과장하는 방어기제다. 노후, 건강, 가족관계 같은 문제는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세금’은 통제할 수 있는 척 할 수 있다. “세금이 너무 높아.” 이 말 속에는 사실 “나는 불안하다.”가 숨어 있다. 아버지는 상속세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상속할 수 없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중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22)은 중산층 이하 가정의 68%가 “상속세 부담이 크다”고 응답했지만, 실제 상속세 과세 대상은 전체 인구의 5%도 되지 않았다. 즉, ‘세금 부담’은 경제현상이 아니라 집단적 신화에 가깝다. 그 신화는 이런 확신으로 이어진다. “국가는 우리 같은 사람을 괴롭힌다.”, “내가 세금 걱정할 정도로 벌었다.” 이는 불평이 아니라, 자존감의 언어적 포장이다.
부모 세대에게 “상속”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지속성이다. “내가 너에게 뭔가를 남길 수 있다”는 감각은 죽음 이후에도 남아 있을 자신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들은 세금을 미워하면서도 그 세금을 걱정함으로써 ‘여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유지한다. 그러나 실상은 아버지의 재산이 아니라, 그 말 속에 담긴 ‘아직 끝나지 않은 역할의 욕망’이 남아 있다.
심리학자 어빈 얄롬은 말했다. “인간은 죽음보다 무의미를 더 두려워한다.” 아버지는 “상속세”를 걱정하지만, 실은 무의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무언가 남길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세금 이야기는 현실의 계산이 아니라 “의미의 잔여물”을 붙잡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아버지는 오늘도 세금을 걱정했다. “증여세가 너무 높아. 나라가 다 가져가.” 나는 계산했다. 대출로 산 주식, 대출로 산 코인. 6~7년 동안 투자 수익은 없고, 원금도 회복하지 못했다. 생활비는 엄마의 절약으로 버텼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세금”을 입에 올렸다. 마치 세금이 손실의 원인인 듯, 마치 세금을 걱정할 만한 위치에라도 있는 듯이.
경제적으로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절박하게 타당하다. 세금을 걱정하는 아버지는 세금을 낼 수 없는 현실보다 ‘세금을 걱정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걸 더 두려워한다. 그 말 속에는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돈을 다루는 사람이다.”라는 선언이 숨어 있다. 그래서 그 말은 경제의 언어가 아니라 존재의 언어다.
아버지는 투자한다. 하지만 그건 돈을 벌기 위한 투자가 아니라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에 가깝다. 손실을 봐도 “이번엔 달라”라고 말하며 다시 돈을 넣는다. 이건 경제적 계산이 아니라, 도박적 회복망상(Gambler’s Recovery Illusion) 이다. 그 환상은 어리석지 않다. 그건 살아있다는 감각을 연장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 말이 무너지면,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그냥 ‘늙은 남자’가 된다.
생활비를 줄이고, 남은 돈으로 대출을 갚는 사람은 엄마였다. 그런데 가족 내 서사는 여전히 “아빠가 투자하고, 엄마가 보조한다.”였다. 이건 수많은 한국 가정에서 반복되는 장면이다. 경제의 실질은 여성의 절약이 지탱하지만, 경제의 서사는 여전히 남성의 이름으로 유지된다. 이때 ‘세금 걱정’은 그 무너진 구조를 버티게 하는 언어적 버팀목이다. “나는 아직 경제의 중심에 있다.” 그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세금을 이야기한다.
경제심리학자 Kahneman과 Tversky는 인간이 손실보다 무의미를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돈을 잃는 것보다, ‘돈을 다루는 자격’을 잃는 게 더 아프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세금을 걱정하는 건 사실상 “무의미해질까 봐”의 공포다. 그는 수익을 잃었지만, “나는 여전히 계산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키고 있다. 그건 존엄의 언어다. 그리고 동시에 절망의 언어다.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의 표면이 아니라 그 말의 결핍을 본다. 그는 돈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존재의 무게’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럴 때 나는 침묵한다. 왜냐면 나는 이미 그 말의 구조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대화가 아니라 방어였고, 방어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어쩌면 인간은 모두 그런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연장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랑의 언어로, 누군가는 신앙의 언어로, 그리고 어떤 이는 세금의 언어로. 아버지는 그렇게 말한다. “세금이 너무 높아.” 나는 그렇게 번역한다. “나는 아직 사라지고 싶지 않아.”
아버지는 빚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고, 코인 시장이 오르면 더 빌렸다. 수익은 나지 않았다. 대출 원금도 그대로 남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이건 기회야”라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적자로 시작하는 건 손실 아닌가요?”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이건 투자야. 돈은 돌아야 벌리지.” 그 말은 경제학이 아니라 심리학이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빚’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를 거치며, 빚은 ‘투자자의 상징’으로 전환됐다. 부채를 지는 것은 “패배”가 아니라 “아직 경기장에 있다”는 참여의 표식이 되었다. 아버지는 적자로 시작했지만, 그건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나는 아직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인지심리학자 Kahneman은 말한다. 인간은 손실보다 무의미를 더 두려워한다. 아버지는 손실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 밖의 사람”이 되는 건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계속 참여했다. 빚을 내서라도. 그건 돈의 논리가 아니라 존재의 논리였다.
‘대출 = 위험’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자아가 붕괴된다. “적자로 시작했다.” 이 말은 곧 “나는 어리석었다.”, “나는 시대에 뒤처졌다.”라는 자아 부정이 된다. 그래서 뇌는 다른 언어를 만든다. “이건 장기투자야.”, “지금은 조정기일 뿐이야.” 이건 회계가 아니라 방어기제(defensive cognition) 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행동은 비합리적이다. 하지만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철저히 일관적이다. 그는 돈을 굴리는 게 아니라 자존심을 굴리고 있었다. 손실이 쌓여도,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있음”이 있었다. 그 행위 자체가 존재의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갚은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그는 대출금의 이자를 내며 ‘무너지는 자아’를 조금씩 유예했다. 그에겐 원금보다 중요한 건 “나는 아직 이 세상에 투자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것은 얼마든지 비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비극이 자녀에게도 이어질 수 있다.
나는 그 빚의 구조를 안다. 돈을 잃는 사람보다 더 아픈 건 자신을 잃는 사람이라는 걸. 아버지는 대출로 경제를 지켰지만, 나는 더 이상 그 방식으로 존재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빚을 져 존엄을 지키는 일보다, 빚을 전략적, 합리적으로 운용하고 나아가 빚 없이 존엄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버지는 자주 말했다. “그땐 서울에 집을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었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1990년대의 부동산 통계를 떠올렸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1억 원 남짓, 지방 광역시는 6천만 원 수준.
물론 그 차이는 컸지만, 지금처럼 불가능한 격차는 아니었다. 10년 저축과 약간의 대출로도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하지 않았다. 그때의 기회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다.
1970~80년대의 국가 주도 산업화는 한 세대를 ‘근면한 노동자’로 훈련시켰다. 그들에게 모험은 불순했고, 안정은 미덕이었다. 그 결과, 아버지 세대는 투자보다 절약을, 기회보다 규범을, 자산보다 직업을 우선시한 세대가 되었다. 그건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국가가 설계한 ‘안정의 도덕체계’의 산물이었다.
1980년대 후반, 금융 자유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로 도시 자산이 폭발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는 그 변화의 신호를 ‘불안정’으로 읽었다. “빚은 나쁜 거야.”, “대출 없이 살아야지.” 그들은 스스로를 성실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 여겼지만, 그 성실함이 오히려 위험 감수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노동의 가치가 무너지고 자산의 가치가 급등했다. 그제서야 그들은 깨달았다. 자신들이 믿어온 노동의 윤리가 더 이상 생존의 해답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늦은 나이에 주식과 코인에 진입했다. 이미 구조는 닫혔는데, 그들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믿었다. 그건 패배가 아니라 부정(denial) 이었다. “우리 때는 기회가 없었어.” 이 말은 사실 “우린 기회가 있었지만, 무서워서 외면했어.”라는 진실을 가리기 위한 방어기제였다.
경제학자 피케티는 말한다. “기회는 불평등보다 느리게 분배된다.” 하지만 아버지 세대는 기회가 분배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건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였다.
‘위험을 감수하면 나쁜 가장이 된다’는 죄책감,
‘빚을 내면 실패한 남자’라는 낙인,
‘안정된 삶’이 곧 사랑이라는 신념.
그 감정들이 기회를 ‘경제적 선택’이 아닌 ‘도덕적 판단’으로 바꿔버렸다.
그들이 뒤늦게 시장에 진입했을 때, 세상은 이미 ‘돈이 돈을 버는 구조’로 넘어가 있었다. 그들에게 남은 건 “빚”과 “후회”였다. 그들은 그 후회를 세금 탓, 정부 탓, 세대 탓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건 단지 “두려움의 언어가 경제의 언어로 바뀐 결과”였다.
아버지가 잘못했다기보다, 그 시대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는 돈을 잃은 게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는 기회를 놓친 게 아니라, 기회가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있었지만, 그걸 감당할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았다.
#생각번호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