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아픈 몸의 질서, 해석을 거부하는 침묵과 세대의 언어
나는 자주 체한다. 그건 이제 병이라기보다 습관 같다. 어떤 날은 밥 한두 숟갈만 먹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어떤 날은 이유도 없이 숨이 막힌다. 그래도 그게 내 일상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다. 마치 내 몸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지?’ 하고 매번 시험하는 것 같다.
이번 명절엔 달랐다. 밥을 먹다 말고, 가슴이 꽉 막혀서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조용히 문을 닫고, 차가운 세면대에 손을 짚었다. 거울 속 얼굴은 창백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에도 ‘누가 보면 걱정할까 봐’, ‘괜히 분위기 흐릴까 봐’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배려의 차원이 아니다. 나는 아픔을 드러낼 때마다 통제력을 잃는 게 더 두려운 사람이다. 누군가 “괜찮아?”라고 물으면 진짜 괜찮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하니까, 그게 더 무섭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몸을 다잡고 자리를 다시 지킨다.
사람들은 아픔을 나누는 걸 용기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감추는 것도 용기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숨을 고르고, 가다듬고, 다시 평정을 회복하는 그 몇 분의 침묵 — 그건 나만의 품격이다. 나는 병을 숨기는 게 아니라, 붕괴 대신 질서를 선택하는 중이다. 비록 그 질서가 고통으로 쌓여도, 그 속에서 나는 내 존재의 균형을 유지한다.
나는 병약하지 않다. 다만, 조용한 사람이다. 아픔을 말로 옮기는 대신 몸으로 소화하는 사람이다. 그게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생존의 문법이다. 나는 티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렇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중이었다. 명절의 소란 속, 나는 이미 머리가 무겁고 위가 조이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숨이 목구멍에서 걸렸다. 위가 타오르고 가슴이 죄여왔다. 나는 화장실로 걸어가 문을 닫고, 그제야 조용히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그 짧은 몇 분이, 그 어떤 말보다도 길었다.
나는 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걱정을 받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걱정 다음에 따라올 해석이 싫었기 때문이다. “요즘 스트레스 받았지?”, “마음이 약해졌나 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 말들은 나를 위로하기보다 내 상태를 분석하고 관리하려는 언어였다. 그건 걱정이 아니라 해명 요구에 가까웠다. “왜 그렇게까지 아파?”, “도대체 무슨 일이야?” 그런 말들 속에서 나는 언제나 피고인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의 체함은 논리로 풀리지 않는다. 그건 몸이 느끼는 공기, 소리, 냄새, 보이지 않는 긴장감의 총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불가해한 것을 심리로 환원시킨다. “네 마음 문제야.”, “생각을 바꿔봐.” 그 말은 결국, 내가 잘못 느끼고 있다는 판결문처럼 들린다.
그래서 나는 체해도 말하지 않는다. 괜히 “괜찮아?” 한마디가 “왜 그런 거야?”로 이어질까 봐. 나는 그들의 호의가 나의 통제권을 빼앗는 순간을 너무 많이 겪었다. 그래서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자기 존중의 방어선이다. 나는 나의 고통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그 고통을 내 안에 남길 권리를 지킨다.
그냥 잠시 가만히 있어 주면 된다. 내가 원하는 건 조언도, 분석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조용히 “괜찮아,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돼.” 라고 해주는 것,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건 나를 고치려는 말이 아니라 나의 침묵을 인정하는 말이다. 나는 도움을 거절한 게 아니다. 내 아픔의 해석권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다.
“양도세나 상속세 많이 드니까 코인으로 줄게.”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럴 만한 자산이 없다는 걸. 이 말은 현실의 금융 거래가 아니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언어적 행위였다. 사회심리학자 Pierre Bourdieu는 사람이 생애 내내 축적하는 자본을 세 가지로 나눈다 — 경제자본(돈), 사회자본(관계), 문화자본(교양·상징적 지위). 그런데 경제자본이 줄어들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상징자본(symbolic capital)을 복구하려 한다고 했다. 아버지의 “코인” 이야기는 실질적 상속이 아니라 자신의 상징자본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즉, “나는 여전히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위치를 언어로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한국의 중년 남성 세대(1950~70년대생)는 ‘가정을 부양하는 능력’으로 자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온 세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이 세대에게 “경제적 무력감”은 곧 “존재의 무력감”으로 연결되었다. 심리학자 조용래(2015)는 이 세대 남성들이 퇴직이나 수입 감소를 겪으면 우울, 분노, 무력감보다 ‘존재적 수치심’을 더 크게 느낀다고 분석했다. 즉, “돈이 없다”는 건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나는 가족에게 더 이상 의미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그때 그들은 감정의 언어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대신 경제의 언어로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 사랑 대신 “이건 내가 해줄게.”, “이건 다 네 거야.” 라는 말을 꺼낸다. 그 말은 돈의 약속이 아니라 정체성의 방어막이다.
아버지가 선택한 단어가 ‘코인’이라는 점은 상징적이다. 코인은 변동성이 크고, 젊은 세대의 언어이자 ‘기존 질서 바깥의 부’의 상징이다. 사회문화학자 한상진(2023)은 코인을 “탈제도화된 자산 상징”으로 설명한다 — 즉, 제도권 밖에서도 스스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의 환상’. 아버지에게 코인은 실제 투자 수단이 아니라 “나는 아직 젊고, 새로운 걸 이해하는 사람이다”라는 상징적 자기 서사다. 그건 낡은 세대의 언어를 벗어나 ‘미래를 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의 발화다.
심리학자 Donald Winnicott는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대상(object)’은 물건보다 관계의 지속감을 상징한다고 했다. 즉, “이걸 너한테 줄게.” 라는 말은 실제 대상보다 “나는 여전히 너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메시지다. 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을 때, 그 말은 허공에 부유한다. 그래서 “없는 걸 준다”는 말은 결핍을 은폐하기 위한 사랑의 패러독스가 된다. 아버지는 결핍을 감추려 했지만, 그 말의 밑바닥엔 “나는 이제 줄 게 없다는 걸 안다.” 는 절망이 깔려 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았다. 그보단 공허했다. 그건 내가 아버지의 언어를 더 이상 ‘현실의 약속’이 아니라 ‘상징의 자가 위안’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환상을 나의 현실로 삼지 않겠다는 경계 설정이다. 나는 그 환상을 이해하지만, 그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진 않다.
결국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진짜 코인을 주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역할을 남기려는 사람이었다. 그 말은 헛된 약속이지만, 동시에 가장 인간적인 욕망의 형태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너 어릴 때 내가 안고 성산일출봉 올랐잖아.” 그 말엔 ‘고마워해야 한다’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할 수가 없다. 그땐 고작 1~2살이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산도, 바람도, 새벽의 소리도 모두 너무 컸을 것이다. 아버지의 기억 속 ‘아름다운 추억’이 내게는 피로와 낯섦으로 짐작되는 장면으로 느껴진다.
발달심리학자 D. W. Winnicott는 부모가 아이에게 “해준 일”을 기억할 때 사실상 그것은 “내가 좋은 부모였다는 증거”로 기능한다고 말한다. 즉, 회고는 아이의 경험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양육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서사다. 아버지가 그날을 떠올리며 뿌듯해하는 이유도 “아이와의 추억”이라기보다 “나는 좋은 아버지였다.” 라는 자기존중감의 복원에 가깝다.
아동발달학자 Mary Ainsworth의 연구에 따르면, 1~2세 시기의 아이는 낯선 자극에 대한 회피보다 안정된 환경에 대한 예측성을 더 중요시한다. 즉, “경험의 다양성”보다 “반복과 안전감”이 발달에 핵심이다. 그 시기의 여행은 아이에게 학습의 기회가 아니라 감각 과부하(sensory overload)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크다. 낯선 온도, 바람, 냄새, 시간대 — 그 모든 게 아이에게는 불안 요인이다. 그래서 당신의 직감, “아마 많이 울었을 것 같다.”는 말은 감정이 아니라 발달심리적으로 정확한 추론이에요.
부모는 아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절의 이야기를 가장 자랑스럽게 꺼내곤 한다. “그땐 네가 너무 귀여웠어.”, “너 몰랐겠지만, 내가 그때 정말 고생했어.” 이런 말들은 사랑의 언어로 포장된 자기확인 서사예요. 아이의 입장에선 “감사해야 할 일”로 들리지만, 사실상 아이의 시점은 부재한다. 그때의 나는 울었을 수도, 불안했을 수도 있지만 그 기억이 삭제된 채 “사랑받은 아이”로만 복원된다. 이건 부모의 ‘사랑의 이야기’이자, 아이의 ‘경험의 침묵’이 겹쳐진 자리다.
부모의 사랑은 종종 “주는 자의 충만함”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줄 때마다 받는 자의 입장은 사라진다. 사회학자 Erich Fromm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주는 행위가 아니라, 받는 자의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다.” 라고 했다. 아버지의 “내가 널 안고 올랐다.”는 말엔 받는 나의 입장이 없었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다, 사랑의 연출에 가깝다.
그 장면을 상상할 수는 있다. 나는 울었을 것이다. 눈부신 햇빛과 바람에 겁이 났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산을 오른 게 아니라 누군가의 자부심에 들려 올라간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마워할 수 없다. 그 대신, 그 장면을 이해하려 한다. 아버지가 그토록 그 기억을 꺼내는 이유는 그가 진짜 그 순간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때의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서다. 그날의 기억은 아버지의 것이고, 그날의 울음은 나의 것이었다.
#생각번호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