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2〉가 보여준 ‘가짜 정의’의 시장
〈베테랑2〉의 세계는 더 이상 공적 정의가 작동하지 않는 세상이다. 법은 무력하고, 사람들은 스스로 판단한다. 문제는 그 판단이 공동의 기준이 아니라 감정의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저 사람이 나쁘다”는 확신만 있으면, 증거도, 절차도 필요 없다. 그 순간 정의는 공공의 언어에서 빠져나와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의 사유물이 된다. 그리고 그 사유화된 정의는 언제나 감정의 독점자를 낳는다.
영화 속에서는 여론이 특정 인물을 향한 분노로 폭주한다. 누군가는 그 감정을 조작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이미지와 내러티브를 만든다. 이 장면은 단순한 언론비판이 아니다. 정의가 공적 검증 체계를 잃으면, ‘감정 조작자’가 정의의 권력을 쥐게 된다는 경고다. 사적 정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진실보다 먼저 소비되는 것은 ‘분노의 방향’이다. 감정이 먼저 불붙으면, 이성은 그 불길을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사유화된 정의는 지속되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감정은 순간의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적 정의는 언제나 다음 표적을 찾아 나선다. 오늘은 성폭행 의혹자, 내일은 정치인, 모레는 그저 “불쾌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때 정의는 옳음의 기준이 아니라, 감정의 발화구를 찾는 습관으로 변질된다. 그 사회에서 ‘옳음’은 존재하지 않고, ‘더 크게 분노하는 쪽’만 남는다.
해치(정해인)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의’라는 이름을 빌렸다. 그의 행동은 “법이 무너졌으니, 내가 법이 되겠다.”는 오만의 연출이다. 그러나 법이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감정이 들어서면, 정의는 ‘보편의 질서’가 아니라 ‘개인의 도취’가 된다.〈베테랑2〉는 그 위험한 순간을 감정적으로 매혹적인 장면으로 포장하지만, 사실 그건 정의의 붕괴를 아름답게 촬영한 비극이다.
정의는 옳음이 아니라 검증 가능성이다. 누가 보아도 같은 절차로, 같은 근거로 판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는 안정된다. 그래서 법은 차갑고 느려야 한다. 그 느림이 바로 감정의 폭주로부터 사회를 지키는 장치다. 〈베테랑2〉가 보여주는 건 “정의가 사유화되면, 감정은 독점되고, 사회는 조작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정의는 감정의 소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나눠 쓸 수 있는 냉정한 공공재여야 한다.
#생각번호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