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이 법을 포기할 때 생기는 역설
법은 태초부터 정의롭지 않았다. 왕의 명령, 귀족의 재산, 통치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규범이 바로 법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권력의 언어를 스스로 뒤집었다. 인권이라는 이름의 ‘제도적 실수’가 일어나면서, 법은 어느새 약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약자들이 법을 버리고 있다. 그들은 느리고 복잡한 절차 대신, 더 빠르고, 더 확실한 ‘감정의 정의’를 택한다.
사람들은 법이 무력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법은 종종 ‘무정’할 뿐이다. 피해자는 증거를 모으는 동안 상처를 반복적으로 되새기고, 판결이 내려질 즈음엔 이미 피로해져 있다. 법은 옳을 수 있어도, 따뜻할 수는 없다. 그 차가움이 사람을 배신감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약자들은 “법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결국 사적 제재라는 ‘즉각적 존엄의 회복’을 택한다. 하지만 그 순간, 법을 포기한 약자는 다시 권력의 언어 속으로 돌아간다.
감정은 빠르고, 공감은 즉각적이다. 그래서 감정의 정의는 늘 매력적이다. 하지만 감정의 정의는 ‘모두에게 동일한 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감정은 편향적이고, 불균형하며, 목소리 큰 쪽을 따른다. 이때 약자가 선택한 감정의 정의는 결국 다른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 돌아온다. 오늘의 ‘공감’이 내일의 ‘마녀사냥’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다. 감정은 따뜻하지만, 그 따뜻함은 불공평하다.
법의 언어는 느리고, 복잡하고, 차갑다. 그러나 그 느림은 곧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접근하기 위한 배려다. 그 차가움은 어느 한쪽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절제다. 법의 냉정함은 인간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의 폭력으로부터 인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다. 그래서 법은 감정보다 덜 잔인하다. 감정은 죄 없는 자도 태워버리지만, 법은 최소한 확인할 시간을 남겨둔다.
〈베테랑2〉는 법이 무너진 사회의 초상을 그린다. 가짜뉴스로 분노가 만들어지고, 사적 제재가 정의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것은 정의의 승리가 아니라, 정의의 시장화, 감정의 유통 구조일 뿐이다. 법이란 결국 사회가 감정의 폭주를 통제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장치다. 법이 사라지면, 남는 건 단 하나 — ‘누가 더 크게 분노하느냐’의 경쟁뿐이다.
정의란, 즉각적인 복수가 아니라 증거를 모으고, 절차를 기다리고, 차가움을 감내하는 인간의 성숙함이다. 법은 차갑지만, 감정보다 덜 잔인하다. 왜냐하면 법은 분노를 나누지만, 감정은 분노를 전염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짜 정의는 언제나 ‘느림’을 선택한다. 그 느림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속도다.
#생각번호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