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는 닿지 않는 마음들

CPTSD에게 ‘상담’이 왜 작동하지 않는가

by 민진성 mola mola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상담이 잘 안 먹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말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더 솔직하게 말해봐.”, “감정을 표현해야 치유가 돼.”, “상담자와 신뢰가 깊어지면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빨리 뛰고, 말은 막혔다. 나는 이해받으려는 순간 더 불안해졌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CPTSD는 감정 문제가 아니라 신경계 문제이기 때문이다.



CPTSD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다

우리는 흔히 감정을 머리로 느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CPTSD에서는 감정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위험 신호 감지 → 신경계 과각성 → 감정·언어 차단. 그러니까 “왜 불안한지 말해보라”는 요청은 이미 닫혀버린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다. 몸이 “지금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말은 자동으로 닫히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다정함 = 치유, 공감 = 회복. 하지만 CPTSD의 신경계는 “가까이 오려는 사람”을 위협 신호로 인식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하려는 태도

감정을 읽고 반응하려는 시도

위로하려는 손길

이 모든 것이 “내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다정함이 무관심보다 더 무섭다.



그럼 무엇이 회복을 일으키는가?

CPTSD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다. 그건 너무 먼 이야기다. 먼저 필요한 것은:

위협 신호가 없는 사람.

나를 분석하지 않는 사람

의미를 묻지 않는 사람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는 사람

침묵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사람

말하자면, 함께 있어도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안전은 친밀에서 오지 않는다. 안전은 비침범에서 온다.



그렇다면 상담은 정말 무의미한가?

그렇지는 않다. 무의미한 것은 ‘말 중심 상담’ 이다. CPTSD에게 필요한 상담은 신경계 중심 상담이다.

설명 X

해석 X

공감 과잉 X

해결 의지 X

대신:

호흡을 함께 맞추고

몸의 긴장을 함께 느끼고

감정이 올라올 ‘공간’만 함께 유지하는 것

이걸 조율(co-regulation) 이라 부른다. 회복은 대화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함께 있는 방식에서 일어난다.



CPTSD는 언어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 어떤 이해와 위로도 몸이 ‘이제는 안전하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닿지 않는다. 그래서 회복은 이렇게 시작된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가까워지지 않아도 괜찮다.”, “여기서 잠시 쉬어도 괜찮다.” 다정함보다 중요한 건 비침범. 신뢰보다 먼저 필요한 건 위협이 없다는 경험. 우리는 공감으로 구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조용하고 무해한 연결 속에서 서서히 돌아온다.




#생각번호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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