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작동하지 않았던 두 가지 이유
나는 지금 장기간의 치료를 받기 이전에도 총 네 번의 상담과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도, 상담사도, 다들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남았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까다로운 것인지, 믿음이 부족한 것인지, 혹은 스스로 회복 의지가 약한 건지.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문제는 나에게 있지 않았다. 방식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는 매우 친절했고, 차분했고, 프로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최근 수면은 어때요?”
“그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그 감정의 원인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스트레스 상황에서 몸의 반응은 어땠나요?”
질문들은 매끄러웠지만, 하나하나가 이미 알고 있는 말들이었다. 나는 아동가족학과 인지과학을 전공했고, 감정과 신경계의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공부했다. 그러니 의사의 질문과 해석, 그리고 안내가 너무 쉽게 예측되었다. 예측된 질문은 도움이 아니라 피로였다. 그 순간 상담은 치료가 아니라 시험 문제 풀이처럼 느껴졌다.
이번엔 딱 반대였다. 상담사는 내 감정을 정말 열심히 들어주었고, 고개를 끄덕였고, 나를 안아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다정함이 숨을 조여왔다.
“너무 힘들었겠어요.”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어요.”
“나는 당신 편이에요.”
그 말들이 나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나에게 들어오려고 하는 마음은 몸에 침범으로 느껴졌다. 다정함이 따뜻함으로 오지 않고, 벼랑 끝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압력처럼 느껴졌다.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선의였지만, CPTSD의 신경계는 “가까워지는 사람”을 위험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그 상담은 더 외로웠다.
그제서야 알았다. 나는 상담을 거부했던 게 아니라, 내 신경계가 상담 방식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과 의사의 해석 중심 상담은 나에게 너무 익숙했고, 그래서 아무 변화가 없었고. 보건소 상담사의 공감 중심 상담은 너무 가까웠고, 그래서 숨을 막았다. 둘 다 맞고, 둘 다 선의였지만, 나에게는 어느 쪽도 안전하지 않았다.
CPTSD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트라우마는 언어보다 먼저 몸에 저장된다. 그래서 회복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사람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
감정을 끌어내지 않는 사람
조용히, 같은 리듬으로, 옆에 있어주는 사람
공감이 아니라 비침범. 설명이 아니라 조율. 이해가 아니라 숨이 쉬어지는 연결. 나는 그걸 어떤 후배와 함께 있을 때 처음 느꼈다. 그 애는 나를 도우려 하지 않았고, 내 감정을 붙잡으려 하지 않았고, 그냥 같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오랫동안 굳어있던 내 몸에서 힘이 스르르 빠졌다. 그게 회복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제 알게 된 것이다. 말로는 닿지 않는 마음들이 있다. 그리고 회복은 설명이 아니라 경험에서 시작된다. 누군가 나를 바꾸려 하지 않고, 이해하려 들지 않고, 내 속도로 숨을 쉬어줄 때. 그 조용한 순간에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돌아오고 있었다.
#생각번호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