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과 예방 사이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우리는 범죄를 이야기할 때 보통 두 가지 언어를 쓴다. “처벌해야 한다” 혹은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두 문장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범죄는 분명히 처벌의 대상이다. 그러나 동시에 예방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건 관용이나 감상적인 인류애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구조적 사실이다.
사람들은 종종 범죄자를 본질적으로 나쁜 인간으로 상정한다. “저 사람은 원래부터 폭력적이야.”, “악한 마음을 먹고 한 거야.” 하지만 범죄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대다수 연구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범죄는 악의가 아니라 감정 조절 능력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분노를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상처를 해석하는 언어를 갖지 못했고, 감정을 안전하게 전달할 관계가 없었고, 고립을 견딜 힘이 없었던 사람들.그들은 감정을 파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범죄는 종종 사랑이 도달하지 못한 자리에서 태어난다. 이 말은 범죄를 정당화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자는 것이다. 이 진실을 외면할 때 처벌은 반복되고, 폭력은 재생산된다.
범죄가 발생하면 그 행동은 명확히 멈춰야 하고 피해는 보호되어야 하며 가해자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처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처벌은 사후의 조치다. 이미 상처가 나고 이미 삶이 무너지고 이미 관계가 파괴된 뒤의 대응. 예방은 그보다 더 앞에서 이루어진다. 예방은 서사가 무너지기 시작한 지점을 되돌아보는 일이다.
사랑을 받는 법을 배우지 못했는가
감정을 말로 해석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는가
고통을 버틸 수 있는 관계가 있었는가
무너졌을 때 붙잡아주는 손이 있었는가
예방은 정서적 여유를 사회가 어떻게 분배하는가의 문제다.
우리는 사랑을 개인의 능력으로 생각한다. “그 사람은 사랑을 잘해.”, “저 사람은 다정해.” 그러나 사랑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경험의 총합이다. 누군가는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그래서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랑을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른다. 이 차이는 의지가 아니라 조건의 차이다. 사랑을 여유롭게 줄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그 여유를 누군가에게서 받았던 사람이다.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은 그 여유를 얻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랑은 한 사람이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분배해왔는가의 결과다. 그리고 이 분배가 실패할 때 그 균열의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범죄가 발생한다.
우리는 범죄자를 혐오하며 말한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단지 서로 다른 양의 사랑을 받고 살아왔을 뿐이다. 그래서 사회가 해야 하는 일은 범죄자를 감싸는 것도, 무조건 처벌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정서적 기반을어린 시절부터 사회적으로 보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
학교의 정서교육
지역 공동체의 회복
가정 내 정서폭력 개입
고립 상태에 대한 사회적 감지 장치
심리 상담과 돌봄의 접근성
이런 장치들은 윤리적 감상이나 이상주의가 아니다. 사회가 안전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범죄는 분명히 책임져야 하고, 멈춰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범죄는 예방되어야 한다. 예방은 법률이 아니라 사랑의 문제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고르게 분배된 사회의 문제다. 우리가 서로를 혐오할수록 사회는 불안해진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수록 사회는 안전해진다. 안전한 사회는 법으로만 유지되지 않는다.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가장 안전한 사회다.
#생각번호202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