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성을 말해야 한다

폭력 피해자, 가해자 전환, 그리고 우리가 외면해온 통계적 사실들

by 민진성 mola mola

우리는 때때로 ‘취약성’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한다. 특정 집단이 더 취약하다고 말하면 마치 그들을 낙인찍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어떤 불편한 사실을 말할 때마다 일종의 방어선을 친다. “그들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지.”, “개인을 일반화하면 안 되지.”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그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이 사라진다. 취약성은 본성이 아니라 확률의 문제다. 그리고 확률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런 정책도 만들 수 없다.


폭력 피해자에게는 실제로 더 높은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만성적 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들— 특히 아동기 신체·정서·성적 학대와 방임을 오래 경험한 집단은 일반 인구보다 명백하게 높은 취약성을 가진다. 이는 감정, 신경계, 사회적 관계, 생존 방식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

충동조절이 약해질 가능성

타인에 대한 경계·불신

고립 경향

감정 조절의 어려움

정신질환 발병률의 유의미한 증가

중독 위험의 상승

빈곤·실업·관계 실패의 반복

이 모든 것은 통계적 사실이다. 이 사실을 말한다고 해서 피해자가 가해자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저 “위험 요인이 평균적으로 더 많다”라는 확률적 경향을 말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외면하는 순간 가장 위험한 지점부터 놓치기 시작한다.



취약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정책은 설계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집단의 취약성을 정확하게 언급해야만 그에 맞는 지원 정책을 만들 수 있다. 예컨대, 폭력 피해자 집단을 둘러싼 공공정책은 이렇게 작동한다.

조기 개입

치료 및 심리재활

주거·경제적 지원

위험 패턴 모니터링

중독·정신건강 개입

고립 완화 프로그램

이 모든 정책은 “이들은 더 높은 확률로 위험에 노출된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 분석을 ‘낙인’이라고 회피하는 순간, 취약층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다시 위험한 환경으로 밀려난다. 즉, 낙인을 피하려는 과도한 방어는 오히려 피해자를 방치하는 결과를 낳는다.



취약성을 말한다고 해서, 일반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취약성을 말하는 것과 그 집단의 개인을 일반화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확률적으로 취약하다”는 말은 정책적 개념이다.

“그들은 다 그렇게 된다”는 말은 낙인·차별이다.

두 문장을 구분하지 않는 사회는 정책도 세울 수 없고, 피해자도 보호하지 못하고, 잠재적 위험 패턴도 발견하지 못한다. 취약성을 말하는 것은 그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가 정책에서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집단’이 아니라 패턴

취약한 집단 내부에서도 진짜 위험은 극히 좁은 하위집단에서 나타난다. 폭력 피해자 전체가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 내부에서

학대

고립

정신질환

약물

경제적 실패

관계 단절

이 요인들이 동시에 결합할 때 비로소 위험이 발생한다. 즉, 취약성은 집단 전체의 특성이 아니라 집단 내에서 나타나는 ‘특정 패턴의 결합’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집단에 대한 취약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을 일반화하지 않는 방식이 가능하다.



취약성을 드러내야만, 보호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더 취약하다는 말을 막연히 불편해하며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진짜 위험은 그 불편함에서 시작된다. 취약성을 말하지 않으면 취약한 사람을 보호할 수 없다. 그들을 보호하지 않으면 그들뿐 아니라 사회도 위험해진다. 사실은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정책은 불편한 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어떤 집단이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낙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더 일찍, 더 정확하게 개입할 수 있는 하나의 “지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취약성을 숨기는 체면이 아니라 취약성을 드러냄으로써 지켜지는 사람들의 삶이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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