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링은 왜 필요한가

학대 피해자를 낙인찍지 않으면서도, 위험 신호를 읽어내는 법

by 민진성 mola mola

학대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쉽게 불편해한다. “그들을 잠재적 가해자로 본다는 건가?”, “낙인을 찍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회는 또 다른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그렇다면 위험 신호는 어떻게 찾아야 하지?”, “사건을 예방하려면 무엇을 봐야 하는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 속에서 우리는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특정 집단 전체를 위험으로 규정하는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학대 피해자가 모두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분명해야 한다. 아동학대를 겪었다고 해서 누구나 위험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평생 폭력적 행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오히려 지나칠 만큼 조심스럽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살아간다. 그러므로 “학대 피해자 = 잠재적 가해자” 이 식의 해석은 과학적으로도 틀리고, 사람을 해치는 낙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학대 피해자 전체가 위험군이 아니라면, 프로파일링이라는 작업은 왜 존재할까?



프로파일링은 ‘집단’이 아니라 패턴을 본다

프로파일링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학대를 겪었는가? → 위험

정신질환이 있는가? → 위험

가난한가? → 위험

이건 과도한 단순화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프로파일링이 실제로 하는 일은 이거다. 전체 인구의 극히 일부에서만 나타나는 ‘위험 신호의 조합’을 찾아내는 것. 학대는 그 조합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자체로 위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건 ‘하나의 요인’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동시에 존재할 때다. 예를 들면,

반복적이고 장기적인 학대

학교·가정·사회에서의 고립

장기간의 치료 공백

경제적 실패

정신질환 또는 약물 문제

최근의 급성 스트레스 사건

이 조합이 겹쳐질 때만 비로소 ‘위험 패턴’이 나타난다. 이건 전체 학대 피해자 중 극소수에만 해당한다. 그러므로 학대 피해자 전체가 취약층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히려 프로파일링을 더 정확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렇다면 왜 프로파일링이 필요한가?

실제 폭력 사건의 상당수는 전체 인구의 아주 좁은 교차점에서 발생한다. 그 좁은 교차점을 찾기 위해 우리는 필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떤 요인들이 결합할 때 위험이 커지는가?

그 조합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회가 어디서 개입했어야 했는가?

이 질문의 답이 바로 프로파일링의 목적이다. 프로파일링은 사람을 의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사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기술이다.



프로파일링이 낙인이 되지 않으려면

중요한 것은 ‘누가 위험한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환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프로파일링은 개인의 “본성”을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지금 이 사람은 어떻게 고립되고 있는가

어떤 치료와 지원이 끊어졌는가

어떤 실패가 반복되고 있는가

그 주변에 누가 남아 있는가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예방의 문제이자 정책의 문제다.



우리가 정말로 지켜야 하는 것

학대 피해자에게 낙인을 찍지 않으면서도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취약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대 피해자 전체가 위험군은 아니다. 하지만 학대 + 고립 + 실패 + 치료 공백이 동시에 존재하는 환경은 누구에게나 위험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험을 감지하고 개입하는 것이 프로파일링의 본질이다. 사람이 아니라 패턴을 보자. 낙인이 아니라 예방을 말하자.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 무너지기 직전의 사람들이다. 그들을 붙잡아주는 것이 곧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생각번호2025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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